고전산책 2

- 김삿갓에 대한 소회

by 우인

한때는 나의 전생(前生)이 김삿갓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이었다.


김삿갓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았던 게 아마 중2였을 거다.

서울에 올라와서 적응 못하고 나혼자만 불행하다고 여기던 시절,

김삿갓이란 시인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매혹적인 인물이었다.

김삿갓에 매료되었다.


전생이 김삿갓이라고 생각한 몇 가지 이유는

황해도 곡산(谷山), 강원도 영월(寧越), 그리고 김씨라는 것 때문이었다.

모두 나와 김삿갓과의 연결점이었다.

처음 읽었던 김삿갓의 시는 나름 교양있고 풍자가 돋보이는 시였었다.


離別(이별)-金笠

가련과 이별하며


可憐門前別可憐(가련문전별가련)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可憐行客尤可憐(가련행객우가련)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可憐莫惜可憐去(가련막석가련거)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可憐不忘歸可憐(가련불망귀가련)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가련이라는 기생에게 준 시였는데, 마치 다다이즘 시처럼 문학소년이던 그 당시의 내 눈에는 세련되게 보였다.


二十樹下(이십수하) - 金笠

스무나무 아래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四十家中五十食(사십가중오십식)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人間豈有七十事(인간개유칠십사)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십식)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 밥을 먹으리라.


서울 부적응자였던 내게는 나를 대변하는 듯한 풍자와 조롱으로 가득찬 경이로운 시였다. 그때는 더이상 다른 시를 못 읽고 김삿갓이라는 존재만 아는 것으로 시간이 흘렀다.


그 후 대학생이 되고 김삿갓에 관한 정대구시인의 책이 나오자 바로 사서 읽고 또한 다른 시들도 조금 더 읽게 되었다.

20대 때 나의 김삿갓은 여전히 감탄의 대상이었지만, 불우한 방외처사에 대한 동정심이 저변에 깔려있는 게 사실이었다.


직장에 들어가 한참 일하면서 40대가 되어서 다시 김삿갓의 시를 읽고 그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조금은 인식이 달라졌다.

막연히 풍자와 조롱만이 정답이었을까, 신분의 벽은 이해하지만 조금 더 세상에 대해 건설적인 방향으로 쓰여졌으면 어떠하였을까.

뭐, 관직의 길은 막히고 아무리 공부한들 쓰여질 곳이 없는데 나라면 어쩌겠는가? 되물어 보았다.

그래도 가족을 내팽개치고 세상을 유랑 다니며 마구 비웃고 자신의 시 재능을 자랑하는 것이 옳았을까?


이제 머리가 하얀 백수(白首)가 되어 다시 김삿갓을 생각해 본다.

안쓰럽다!

시의 재능은 있으되 시로서 세상에 무슨 기여를 했던가?

본인 감정의 배설물에 불과할 뿐이다.

쓴 시를 불사르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 공명심(功名心)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본인 의지와는 관계없이 시는 남겨졌겠지만 어쨌든 세상에 대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지는 않아 보인다.


인터넷으로 찾은 김삿갓의 시들에는 위작(僞作)으로 보여지는 게 너무 많았다. 김삿갓 사후 그의 이름을 빌려 전국을 횡행하는 사람이 십 여명은 되었다니 그럴 법도 하다. 수준 이하도 많았다.


김삿갓, 金笠

본관은 안동. 서울 장동(壯洞) 출생.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

이제 평안히 잠드시길~


甲辰年에 봄을 기다리며 內素軒에서 又人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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