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책 5

- 대한민국 최고의 문장가를 꼽으라면

by 우인

대한민국 최고의 문장가文章家를 꼽으라면?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서 최고의 문장가를 꼽으라는 문제가 시험에 나왔다면

나는 서슴없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을 쓸 것이다.

약간의 갈등이 없지는 않으나

첫째로는 燕巖(연암), 둘째로는 茶山(다산) 정약용(丁若鏞)을 꼽겠다.

개인적으로는 다산을 더 좋아하나 답을 쓸 때는 연암을 쓸 것이다.


그 밖에도 교산(蛟山) 허균(許筠),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상촌(象村) 신흠(申欽), 택당(澤堂) 이식(李植),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홍재(弘齋) 정조대왕(正祖大王),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 계곡(谿谷) 장유(張維) 등도 생각할 수 있지만 최고로 뽑기에는 저마다 약간의 미진함이 있다.


조선 영조시대의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는 내가 엄청 좋아하는 문장가이자 시인이지만 작품 수에 있어서 아쉬움이 있다.

그의 아들인 금대(錦帶) 이가환(李家煥)의 글도 좋아하지만

두 분 모두 작품이 적어서 아쉽다.

이가환이 역적으로 몰려 죽은 탓이리라.


이용휴의 小品인 “나를 돌려다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인데, 혜환의 글은 奇하다.

청나라의 패관체(稗官體)에 영향 받은 탓이겠지만 영조 시대의 전업문장가로서 기존의 문법에서는 벗어나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였다.

혜환 이용휴는 과거공부를 포기하고 전문작가로서의 길을 택해 당대 재야 문형(文衡)이라고도 불렸다.

글을 쓰면 이 분께 서문을 의뢰할 정도이니 그 문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작품이 적어 최고의 문장가라 칭하긴 부족하다.

아깝다. 수많은 작품이 사장되었을 테니.


문장가로서 연암(燕巖)을 최고로 치니 다산(茶山)은 억울할 만하다.

그러나 시와 문장을 망라한 문인(文人)으로만 따져 보면

다산(茶山)을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서 첫째가는 분으로 꼽을 터이니

그리 억울할 일도 없겠다.


연암의 글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이백 오십년 전의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모던하다.

스피드하면서 감각적이다.

글이 깊이가 있는 것은 오랜 독서로 인한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되어 있을 터이다.


연암(燕巖)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것이 아이러니 하면서 우리나라에게는 복이다.

연암(燕巖)이 과거에 연연하였다면 그런 글을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험관이 원하는 답을 위하여 중국의 고전을 들먹이며 틀에 꿰맞추며 상투적인 표현으로 일관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연암이 과거에 무관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 우리나라에게는 행운이다.


<열하일기>를 예전에는 단순히 기행문이라 생각했다.

우리나라 국어교육의 맹점이다.

나이가 들어 열하일기를 읽어 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연암의 글은 발랄하지만 가볍지 않고, 깊이가 있으면서 지루하지 않고 근엄하지만 점잖은 체하지 않고 넓으며 깊다.


연암일기 중에 걸어가면서 道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도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대화가 아니다.

가령 다음과 같이 나온다.

" 나는 수역인 洪命福 군에게.'자네 道를 아는가? ' 라고 물으니 홍군은 두손을 마주 잡고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기에 나는

'도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닐세. 바로 저기 강 언덕에 있네' 라고 했다.

홍군은'이른바 詩經에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말을 이르는 것입니까?'하고 묻는다.

연암이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닐세.

압록강은 바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가 되는 곳이야.

그 경계란 언덕이 아니면 강물이네. 무릇 천하 인민의 떳떳한 윤리와 사물의 법칙은 마치 강물이 언덕과 서로 만나는 피차의 중간과 같은 걸세.

도라고 하는 것은 다른 데가 아니라 바로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네.'

라고 일러 주었다.

홍군은

'무슨 말씀인지 감히 묻습니다..'

"서경에 人心은 오직 위태롭게 되고 道心은 오직 희미해진다고 했네. 서양사람들은 기하학에서 하나의 획을 분별하여 하나의 선으로 깨우치기는 했으나, 그 미약한 부분까지 논변하고 증명할 수는 없어서 '빛이 있고 없는 그 사이(有光無光之際)라고 말했고, 불교에서는 그 즈음(사이)에 임하는 것을,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았다(不卽不離)고 말했다네. 그러므로 그즈음에 잘 처신함은 오직 도를 아는 사람만이 능히 알 수 있으니...“

뭐 이런 식의 글이다.


기운(氣運)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중국마을의 시골 훈장인 富선생을 만나 대화를 하려다가 상대방의 무식함과 무례함에 대해 불쾌감과 실망감도 이야기하고 책 내용이 끝이 없었다.


벽돌을 쌓는 법도 나오고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 이야기도 나오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통곡하고 싶다고 하자 왜 그러냐고 동행이 묻자, 연암은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七情중에서 오로지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 만하며, 미움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 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네. 통곡소리는 천지간에 우뢰와 같아 지극한 감정에서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온 소리는 사리에 절실할 것이니 웃음소리와 뭐가 다르겠는가?...“


어찌 보면 요설(饒舌)같기도 하고 궤변같기도 하지만 생활 자체에 깊은 사유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그런 대화가 끝없이 이어져 나온다.


술집에 가서는 이런 깃발도 읽고 기억해 낸다.

聞名應駐馬 이 집의 명성을 들은 자는 응당 말을 멈출 것이고

尋香且停車 술 향기를 찾는 사람은 장차 수레를 세우리라.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생각나는 대로 써 봤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문장가로는 서슴없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라고 답을 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을 더 좋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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