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참모들 5

- 5. 제2차 출격

by 우인

2차 출격

2차 출격인 임진년인 1592년 5월 29일에 본영을 출발해 6월 10일 귀환할 때까의 기록이다.

이때부터 순천부사 권준이 참전하여 중위장을 맡는다.

거북선이 처음으로 참전한다.


2차 출격의 주요장수


중위장(中衛將) 순천부사 권준(權俊)

좌부장(左部將) 낙안군수 신호申浩

우부장(右部將) 보성군수 김득광金得光

전부장前部將 흥양현감 배흥립裵興立

중부장中部將 광양현감 어영담魚影潭

유군장游軍將 발포가장 나대용羅大用(영군관 훈련봉사)

좌척후장左斥候將 녹도만호 정운鄭運

우척후장右斥候將 사도첨사 김완金浣

하후장扞後將 영군관 가안책賈安策, 송성宋晟

참퇴장斬退將 前첨사 이응화李應華

구선돌격장龜船突擊將 영군관營軍官 이기남李奇男

좌별도장 우후 이몽구李夢龜

우별도장 여도권관 김인영金仁英

좌부기전통장 순천대장 유섭劉攝

우부기전통장 진군관鎭軍官 이춘李春


*2차 출격 전투일지戰鬪日誌


1592년(임진년) 5월 29일 새벽, 전라좌도 수군을 이끌고 단독 출전.

이날 경상우수사 원균은 하동 선창에 주둔하고 있다가 전선 3척을 이끌고 노량에서 합류.

이순신장군 23척, 원균 3척 총 26척.

사천선창에 일본 배 발견. 사천해전(1차)에서 일본 대선 12척 분멸. 총 13척 격침.

2차 출격에 거북선 처음 출전.

毛自郞浦(모자랑포))로 옮겨 진을 치고 정박.

이순신장군 부상당함. 나대용, 이설도 총에 맞음.


6월 1일 고성 蛇梁島(사량도)로 이동 정박.


6월 2일 오전 8시경, 당포로 출발. 10시경에 도착.

선창에는 대선 9척, 중소선 합해 12척 모두 21척이 정박.

순천부사 권준이 활로 적장을 射殺. 唐浦海戰(2차)

진주 땅 昌新島(창신도)에 정박.


6월 3일 새벽, 출항, 수색 하였으나 성과 없이 고성 땅 古屯浦(고둔포)에 정박.


6월 4일 이른 새벽, 당포로 이동. 전라우수사 李億祺(이억기)가 판옥선 25척을 거느리고 합류.

鑿梁(착량)으로 이동. 정박.


6월 5일 아침, 唐項浦(당항포) 해전. (2차출격 3차해전)

일본 대선 9척, 중선 4척, 소선 14척 등 26척. 군선 1척을 남기고 25척 분멸. 당항포 근처에서 정박.


6월 6일 새벽, 당항포 입구에서 군선 1척에 타고 도주하는 일본군 100여명을 전멸시킴.

저녁에 고성 땅 맛을간장에 정박.


6월 7일 새벽,웅천 땅 甑島(증도)로 이동. 正午경 거제도 永登浦(영등포)) 앞바다에 이름.

栗浦海戰(율포해전)에서 대선 5척, 중선 2척을 분멸.(일본군 대장 구루시마 미치유키) 총 7척 격침.

몰운대까지 진출하였다가 거제 땅 溫川梁(온천량)의 松津浦(송진포)로 돌아와서 정박.

6월 8일과 9일 진해만의 전역과 가덕, 천성, 안골포 등지에 탐망선을 보내 적을 수색하였지만, 일본 함대를 찾지 못한 채 송진포와 당포에서 정박했다.


6월 10일 미조항 앞바다에서 연합함대를 해체하고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2차 출전 결과(5월 29일-6월 10일)

네차례의 해전

사천(5월 29일), 당포(6월 2일), 당항포( 6월 5일), 율포(6월 7일) 해전을 통해 72척을 분멸하고 일본군도 300여급이나 베었음.


<2차 출전 사상자 명단>

대장선 正兵 김말산, 우후선 방포 진무 장언기

순천1호선 사부, 私奴 배귀실 순천 2호선 격군 사노 막대등 전사자 13명, 부상자 총 3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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