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참모들 6

- 6. 제3차 출격

by 우인

3차 출격은 임진년 1592년 7월 6일부터 7월 13일의 전투 기록이다.

한산도대첩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이 정헌대부(종2품)으로 승급한다.


3차 출격의 주요장수


중위장 순천부사 권준權俊 좌부장 낙안군수 신호申浩

우부장 보성군수 김득광金得光 후부장 흥양현감 배흥립裵興立

전부장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 중부장 광양현감 魚影潭

유군장 발포만호 黃廷祿 좌척후장 녹도만호 鄭運

우척후장 여도권관 金仁英 한후장 영군관 金大福, 배응록

참퇴장 전첨사 李應華 구선돌격장 영군관 李奇男

좌별도장 前萬戶 尹思恭, 賈安策

우별도장 前萬戶 송응민, 보인 李彦良

좌부기전통장 순천 대장 劉攝 우부기전통장 진군관 李春


제3차 출격(出擊) 전투일지(戰鬪日誌)


1592년(임진) 7월 4일 전라우도 수군이 좌수영으로 합류.


7월 5일 합동작전을 위해 약속을 정함.


7월 6일 새벽 경상도 해역으로 출전.

露梁(노량)에서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류. 원균의 판옥선은 7척. 진주 땅 昌新島(창신도)에 이르러 정박.


7월 7일 고성 땅 唐浦(당포)에 도착. 작전계획 수립.


7월 8일, 이른 새벽 출진. 見乃梁(견내량)에서 적함 발견.

학익진 전법 채용. 일본군 대장은 와카사카 야스히루.

이순신장군의 대승, 일본군 73척중 대선 35척, 중선 17척, 소선 7척등 모두 59척이 분멸, 격침당함. 14척이 부산쪽으로 도주. 일본군은 와키사카 사베에(脇坂左衛兵), 와타나베 시치에몬(渡邊七右衛門), 미나베 사마노조(鎭鍋左馬允)등의 장수와 9,000여명이 전사. (閑山大捷)

見乃梁(견내량) 안바다에 정박.


7월 9일. 가덕도로 향함. 거제 땅 온천도에서 밤을 지냄.


7월 10일 이른 새벽, 안골포의 적을 치기 위해 출전.

안골포에는 일본 대선 21척, 중선 15척, 소선 6척등 모두 42척이 정박.

치열하게 공격하였으나 밤이 되어 물러남.


7월 11일 새벽, 안골포로 진출하였으나 일본군은 모두 패퇴. 후에 조사된 바로는 일본 전선 절반이 격침되었다고 함. 동래의 沒雲臺까지 진출.


7월 12일 오전 10시 한산도로 돌아옴.


7월 13일 여수 좌수영으로 돌아옴.


한산대첩 결과로 이순신장군은 正憲大夫(정2품)로 승급.


제3차 출전결과

전사자 19명, 부상자 11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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