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4차 출격
4차 출격은 임진년(1592년)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의 전투 기록이다.
9월2일 전투에서 녹도만호 정운(鄭運)이 전사하였다.
제4차 출격(出擊)
임진년(1592년)
8월 24일 남해땅 관음포에 정박, 80세가 넘은 前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조방장으로 출전.
8월 25일 사량진에서 원균과 만나 적정에 대한 정보 파악. 당포에 정박.
8월 26일 일기관계로 저물녘에 출격, 밤에 진해만 진입. 칠천량에 정박(추정)
8월 27일 熊川 땅 薺浦 뒤 院浦로 이동 정박.
8월 28일 종일 수색.
8월 29일 長林浦부근에서 일본 대선 4척,소선 2척 만남. 6척 焚滅.
밤새 작전회의.
9월 1일 새벽 출항.釜山浦로 향함. 몰운대근처 花樽仇未에서 일본 대선 5척 분멸. 多大浦에서 8척 분멸. 西平浦에서 일본 대선 9척 분멸. 절영도에서 대선 2척 분멸. 일본군은 부산포에 470여척이 정박중이었으나 산위에 올라가 6군데 진을 치고 저항. 작전회의(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 결과, 총공격을 하기로 결정. 우부장 녹도만호 정운과 거북선 돌격장 이언량이 선봉으로 나서 일본 대선 4척을 깨뜨림. 연합함대는 일본군선 100여척을 분멸. 한밤중에 가덕도로 돌아와 정박.
9월 2일 부산포전투에서 녹도만호 정운이 戰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