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순천부사 권준權俊
순천부사順天府使 권준權俊
순천부사 권준은 이순신장군의 참모장으로 볼 수 있다.
나이도 이순신장군보다 4살 위이고 진중한 성격으로 이순신장군이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한 상대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선조30년(1597년) 1월 12일 기록에 이런 기록이 있다.
"김수가 아뢰기를,
“서성(徐渻)이 술을 차려 잔치를 베풀고서 두 사람이 화해(和解)하도록 했는데, 원균이 이순신에게 말하기를 ‘너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다.’【다섯 아들이란 권준(權俊), 배흥립(裵興立), 김득광(金得光) 등을 말한다. 】하였으니, 그의 분해 하고 불평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당대에 이순신의 다섯 아들이라고 칭하는 인물이 권준, 배흥립, 김득광으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권준이 첫번째로 거론된 이름이다.
난중일기에는 임진년(1592년) 2월 26일에
“공무를 마친 뒤 흥양현감 배흥립과 순천부사 권준과 함께 이야기 하였다.”
계사년(1593년) 3월 1일에는
“온갖 생각이 마음에 떠올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번잡하고 어지러웠다. 이응화를 불러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천부사가 탄 배에 보내어 병세를 알아보게 하였다.”
계사년(1593년) 6월 15일 “우수사, 충청수사, 순천부사, 낙안군수, 방답첨사가 와서 함께 햇과일을 먹다가, 날이 저물어 헤어졌다.”
계사년(1593) 7월 14일 “순천부사가 들어왔다.(장흥부사가) 본부의 일을 (망령되게 퍼뜨린 짓을)형언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갑오년(1594) 1월 17일 “여도만호 김인영, 순천부사 권준, 이함 및 우후도 와서 잤다.”
갑오년 9월 25일 “순천부사 권준이 잡혀 가면서 보러 왔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와 같이 순천부사 권준을 신뢰하는 기록이 난중일기 곳곳에 나온다.
1차 출격에는 권준은 전라감사의 차출로 육군으로 파견 가서, 참전은 못하였으나 2차 출격부터 중위장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참모장 역할을 수행한다.
나이도 이순신 장군보다 위이고 순천부사라는 직책도 고위직이라 이순신 장군이 자주 의논하였으며, 충무공이 매우 신뢰하였던 인물임. 어떤 기록에는 문과 급제자라고 나오는데, 문과방목 어디에도 급제 기록은 없으나, 선조 12년(1579년) 식년시 갑과에 3등으로 무과급제한 기록이 나온다.
29명중 3등이니 아주 좋은 성적이라 하겠다.
권준(權俊,1541년 ~ 1611년)은 자는 언경(彦卿)이고, 호는 원당(元堂)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대학자인 양촌 권근의 후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하다가 임진왜란 당시에 순천부사로 재직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좌수사 이순신 휘하에 배속되어 중위장으로 활약하며 옥포 해전, 사천 해전, 한산 대첩, 부산포 해전 에서 조선 수군이 연승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공을 인정받아 원균에 이어 경상우수사가 되었다.
이후 이순신이 파직되고 원균이 통제사가 되자 사직하였다.
1597년 2월 나주목사가 되었고,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의 수군이 패한 이후 7월에 충청도 수군절도사가 되었고, 임진왜란이 이후에는 경기 방어사가 되었다.
1600년 선조의 어명으로 전마를 하사받았다.
1601년에는 충청병사에 임명되었고, 1604년 임진왜란의 전공으로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안창군(安昌君)에 봉해졌다.
1605년 황해병사가 되었으나 1607년 해랑도 사건이 일어나 직무를 제대로 못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이후 전라병사에 임명되었다. 1611년 사망하였다.
권준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보니,
<조선왕조실록 선조 30년(1597년/정유년) 1월 17일 記事>
上略
김수가 아뢰기를,
“서성(徐渻)이 술을 차려 잔치를 베풀고서 두 사람이 화해(和解)하도록 했는데, 원균이 이순신에게 말하기를 ‘너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다.’【다섯 아들이란 권준(權俊), 배흥립(裵興立), 김득광(金得光) 등을 말한다. 】하였으니, 그의 분해 하고 불평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였다. 下略
<출처 :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수익 (역) | 1987>
<조선왕조실록 선조 36년(1603년 계묘)/ 명 만력 31년 6월 25일(경술) 3번째 기사>
영의정 이덕형(李德馨),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 이항복(李恒福), 좌의정 윤승훈(尹承勳), 우의정 유영경(柳永慶), 대제학 이호민(李好閔), 우참찬 황진(黃璡)이 아뢰기를,
“익운 공신(翊運功臣)들이 등급을 마련해야 하겠기에 충훈부에 있는 녹권(錄券)의 전례를 조사해 보니, 정사 공신(定社功臣)의 경우 태종 대왕이 정안공(靖安公) 시절에 일등 공신의 첫머리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왕세자도 종묘와 사직을 호위한 공로가 있으니 마땅히 그전의 예대로 처리해야 할 듯합니다. 왜적을 정벌한 여러 장수들 중에 안위(安衛)는 행상의 대전에는 미처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순신(李舜臣)의 장계에 마련한 군공의 내용을 보면 권준(權俊)이 첫머리에 있고, 이순신(李純信)이 둘째에 있으며, 정운(鄭運)은 셋째에 있고, 배흥립(裵興立)은 넷째에 있었습니다. 인원수가 많은 듯하여 그 중에 우등한 사람을 뽑다보니, 정운은 빠지고 배흥립은 참여하여 일이 미안스럽게 되었습니다. 정운을 추가하여 녹공할 수 없다면 이 두 사람도 앞서의 계사대로 산개(刪改)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출처 : ⓒ 한국고전번역원 | 김주희 (역) | 1988>
<재조번방지 2(再造藩邦志 二)> 申炅 著
李舜臣亦自加里浦。馳至全羅道左水營。治兵整船以待。及聞賊兵已下陸。列郡潰裂。計無所出。欲列艦露梁口。遏賊來路。修城自守。又欲固守本道。不窺閑山之口。猶豫未決。順天府使權俊光陽縣監魚泳潭。移書起之。身亦馳往。力贊下海之計。鹿島萬戶鄭運及舜臣軍官宋希立。奮憤願以死自效。辭語慷慨。
이순신이 또한 가리포에서 전라도 좌수영으로 달려가 군사를 다스리고 배를 정비하며 대비하였다. 그런데 왜군이 이미 육지로 상륙하여 여러 고을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 계책을 세울 길이 없었다. 이에 배를 늘어놓아 노량 어귀를 지켜 적의 길을 막고, 성을 수리하여 스스로 지킬 것인지,혹은 전라도 일대를 굳게 지키되 한산도 앞바다는 넘보지 않을 것인지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이때 순천부사 권준과 광양현감 어영담이 글을 보내 그를 독려하고, 몸소 달려와 힘써 바다로 나아가 싸울 것을 권하였다.또한 녹도 만호 정운과 이순신의 군관 송희립이 분개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고 자청하니,
그 말이 매우 비장하였다.
< 唐浦破倭兵狀> 李忠武公全書 1592년 6월 14일
中衛將權俊突入。射中倭將者。應絃倒落。蛇渡僉使金浣,軍官興陽保人陳武晟斬頭。賊徒畏遁。中丸逢箭者浪藉顚仆。斬首六級。
<당포에서 왜를 격파한 보고서>
(중위장 권준이 돌진하여 들어가 왜장이라는 놈을 화살로 쏘아 맞추자, 쿵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므로, 사도첨사 김완과 군관 흥양보인 진무성이 그 머리를 베었습니다. 적의 무리들이 겁내어 달아나면서도 철환과 화살에 맞은 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넘어지는데, 머리6급을 베고,)
<故 統制使 李公의 遺事> 白沙集 4권 白沙 李恒福著
進至唐浦。又有賊船十二艘。分泊江岸。中有一大船。上設層樓。外垂紅羅帳。有賊酋一人。金冠錦衣。指揮諸賊。公令諸將促櫓直衝。順天府使權俊。自下 仰射。正中其酋。賊應弦而倒。一軍稱慶。日暮。回陣於蛇梁前洋。軍中夜驚。擾亂不止。公堅卧不起。良久。使人搖鈴。一軍乃定
당포에 이르렀다. 또 적선 열두 척이 있어 강가에 나누어 정박해 있었는데, 그중에 큰 배 한 척이 있었다. 그 배 위에는 층루를 세우고, 밖에는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워 놓았다. 도적의 수괴 한 사람이 금관을 쓰고 비단옷을 입은 채 여러 도적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공이 여러 장수들에게 노를 재촉하여 곧바로 돌격하라고 명하자, 순천부사 권준이 아래에서 위로 활을 쏘아 그 수괴를 정확히 맞혔다.
적은 화살이 날아오자 맞아 쓰러졌고, 온 군대가 기뻐하며 환호하였다. 날이 저물자 사량 앞바다로 돌아가 진을 쳤다. 그날 밤 군중에 놀람이 일어나 소란이 그치지 않았으나, 공은 굳건히 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 뒤에 사람을 시켜 방울을 흔들게 하니, 온 군대가 비로소 진정되었다.
권준은 이순신장군이 정읍현감(종6품)에 임명될 때 동시에 순천부사(종3품)에 임명되었으니,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충무공과 꺼끄러울 수 있는 관계였으나 전쟁기간 내내 보여준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무난하게 공과 사를 구분한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인물임을 유추하게 해 준다. 충무공이 중위장으로 삼을 만큼 신뢰하였고 중요한 사항을 속을 터놓고 논의할 수 있는 최고의 참모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