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량의 삶
한량(閑良)의 삶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이 2002년이니 20년이 넘었군요.
거의 매일 읽었으니 이젠 조선시대 사람 이름만 들어도 대충 누구인지 신상명세를 댈 수 있을 정도로(이것도 오만이지만) 읽은 것 같습니다.
그냥 읽으면 지루해 질까봐 하나의 주제를 갖고 접하다 보니 술술 읽히고
짧으면 6개월, 길면 몇 년이 지나면 파일이 하나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만든 파일이 “호보(號譜)”, “이순신장군의 참모들”, “죽은자들의 기록, 졸기(拙記)”, “역적열전(逆賊列傳)”, “소설 이괄(李适)”, “장원급제자의 일생”, “임진왜란때 전사한 장수(80명)”, “임진왜란 때 도망간 장수(80명)”, “조선장수전(朝鮮將帥傳)”, “인조시대(仁祖時代)”, “당파(黨派)”, “ 제주목사열전(250명)”, “가평군수열전(180명)”, “영월부사열전(220명)”, “강릉부사열전(150명)”, “순교자열전(110명)”, “당호연구(1000개)” , 조선유학사, 조선시대인물열전 등이 있습니다.
그러니 사촌형이나 동기들이 퇴직 후에 지루하다고 말할 때 나는 이해가 안갑니다. 지루할 틈이 없죠. 하루가 엄청 빨리 지나갑니다.
“호보(號譜)”는 고등학생 때 책을 쓸 목표를 갖고 호를 모았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분야라 ‘가’부터 ‘하’까지 우리나라 인물들의 호를 모아 놓은 것이고,
“이순신의 참모들”은 이순신 장군의 부하, 70명 정도를 찾아 파일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어릴 적부터 이순신장군은 도대체 누구와 같이 싸웠을까가 궁금해서 부하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죠.
몇 년전 출판사에 기획안을 보냈더니 편집장과 담당직원이 찾아와서 대충 설명하고 빨리 쓰라고 하지만 게을러서 구성은 없이 초고상태에 머물러 있고 그냥 열전 스타일이라 중단된 상태고,
“죽은 자들의 기록, 졸기(拙記)”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죽은 이들에 관한 기록인데 “졸기”라는 이름으로 몇 년 전에 책이 나왔더군요.
“소설 이괄(李适)” 은 정말 오랜 기간 자료를 찾아서 “소설 이괄”과 “이괄평전” 두 갈래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소설만 딱 한 줄 쓰고 중단해 있고,
“역적열전(逆賊列傳)”은 조선시대 국왕별로 역적만을 모아 놓은 것으로 “역적의 탄생” 이라는 제목으로 해서 ‘그들은 어떻게 역적이 되었나’ 라는 컨셉으로 역적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드는 것이라고 써 볼까하며 자료조사를 완료해 놓았으나 역시 게으름병이 도져서 그 상태,
“장원급제자의 일생”은 “성적은 행복순인가?” 라는 컨셉으로 장원과 말석 급제자를 찾다 보니 규모가 커져서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전체 15,000명 정도를 찾아서 어디까지 승진했는지 알아보았더니 재미난 통계가 생기더군요. 식년시(3년에 한 번 보는 정기시험)에 33명을 뽑을 때 10등에서 20등 사이가 가장 성공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문과급제자는 기록이 풍부한데 무과급제자는 추적이 꽤 어렵더군요.
무과급제자는 잘 된 케이스가 부사(府使)나 군수(郡守) 정도의 진급, 아니면 병마절도사나 수군절도사까지가 한계이더군요.(이 정도도 사실 고위직이지만 문과랑 비교해보니 상대적으로 약해서)
“당파(黨派)”는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당파를 시대별 인물별로 파일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한국 한시(漢詩)와 중국 한시를 작가별로 분류해서 시대별(동진, 당, 송, 금, 원, 명, 청나라 등) 장르별(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고시, 詞, 賦등)로 정리해 놓았고,
그 밖에도 그냥 열전처럼 자료조사만 엄청 해놓았습니다.
(한 4기가바이트 정도 되더군요)
집에서는 결과가 없다고 뭐라고 하지만 난 그냥 과정이 더 즐겁습니다.
전형적인 한량(閑良)기질이죠.
아무튼,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계속 읽다 보니 사람들 이름을 듣는 순간 어떤 느낌이 오더군요.
뭐 과학적인 근거는 없고 그냥 막연한 추측 혹은 추정, 촉 같은 것.
회사 후배가 우리 팀에 발령받아 왔을 때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자 마자 내가 “넌 조선시대 태어났으면 딱 홍문관 교리다.” 했더니 홍문관 교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몰라 하길래, 재상(1품)이나 판서(2품) 정도는 아니고 5 – 6품 정도의 이름, 홍문관 교리나 사헌부 장령 정도.
그것도 사실 대단한 위치이죠(몰라서 그렇지). 그래서 이 후배는 지금도 호를 “홍교” 라고 부릅니다. 홍문관 교리의 약어, 한자로는 넓을 弘(홍)에 흴 皎(교)로 지어 주었죠. 원래는 홍교(弘校)이어야 하는데 교를 살짝 바꾸었죠.
이름이 갖는 뉘앙스가 있더군요.
한자의 어감이 주는 느낌 같은 거로 재상의 이름과 판서의 이름, 군수나 무관의 이름이 좀 다르더군요.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고 대충 느낌으로 판단하는)
예전 ‘목민심서’를 연출할 때인데 경복궁에서 촬영 중에, 스탭 중에 한 명이 궁궐이 자기한테 익숙하다고 얘기하길래 농담 삼아 “너 얼굴은 장원서 별제(잡급직)다.” 하고 얘기했더니 나머지 스탭도 다들 자기는 조선시대라면 뭐 같냐고 하길래 우리 스탭들의 얼굴은 대부분 오위장, 수문장, 별좌, 별제, 별감 등 문관의 얼굴은 없고 무관이나 잡급직이라고 답해 준 기억이 있습니다.
나보곤 어떠냐고 되묻길래 “난 김진사(進士) 정도. 벼슬해봐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기생들이랑 어울려 냇가에서 시나 쓰면서 소일하는 게 제일이지, 뭐하러 궁궐에 들어와 당파 싸움에 밀려 죽냐.” 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20년간 古典의 세계를 활보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고 있으니 한량(閑良)의 삶이야말로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內素軒에서 又人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