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열하일기를 읽는 중에
열하일기를 읽는 중에
조선시대 문인들이 왜 연암燕巖, 연암燕巖하였는 지 이제야 조금은 알 거 같다.
최근에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온 <열하일기> 세 권중 첫째 권을 읽고 난 지금,
전부 다 읽은 후엔 그 감흥을 기억 못할 거 같아 미리 적는다.
다 읽지 못한 채 앞서가는 측면도 있지만 처음의 느낌이 때로는
더 정확하다는 점을 여러 곳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수업 때 왜 연암의 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문교부당국자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물론 수필 한 편 -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 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그 정도로는 턱도 없이 모자란다.
나 스스로도 <열하일기>라는 제목이 주는 가벼움 때문에
하찮게 본 탓도 있다.
일기라고 하니 기행문 나부랑이인 줄 편견을 갖고 대한 탓도 있었다.
예전에 제주에 있을때 내가 잘 아는 병원장께 <열하일기>를 읽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알려 주었더니
그 분이 매일 밤마다 두시간씩 열하일기를 읽는 재미로 산다는 말을 듣고도 그러려니 했다.
이제 내가 열하일기를 정면으로 접해 보니 그 분 말씀을 이해할 듯 하다.
연암은 왜 이 책을 썼을까?
열하일기서(序)- 연암이 직접 쓴 게 아니고 영재 유득공이 쓴 것으로 보여짐 -에 보면
이용후생(利用厚生) , 이 한마디로 모든 걸 대변한다.
연암의 방대한 지식도 지식이려니와 문장력도 엄청나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장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발랄하지만 가볍지 않고, 깊이가 있으면서 지루하지 않고
근엄하지만 점잖은 체 하지 않고 넓으며 깊다.
걸어가면서 도(道)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도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대화가 아니다.
가령 다음과 같이 나온다.
" 나는 수역인 홍명복 군에게.
'자네 도를 아는가? ' 라고 물으니 홍군은 두손을 마주 잡고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기에 나는
'도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닐세. 바로 저기 강 언덕에 있네' 라고 했다. 홍군은
'이른바 시경에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말을 이르는 것입니까?'하고 묻는다.
연암이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닐세. 압록강은 바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가 되는 곳이야.
그 경계란 언덕이 아니면 강물이네. 무릇 천하 인민의 떳떳한 윤리와 사물의 법칙은 마치 강물이 언덕과 서로 만나는 피차의 중간과 같은 걸세. 도라고 하는 것은 다른 데가 아니라 바로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네.'
라고 일러 주었다. 홍군은
'무슨 말씀인지 감히 묻습니다..'
"서경에 인심은 오직 위태롭게 되고 도심道心은 오직 희미해진다고 했네. 서양사람들은 기하학에서 하나의 획을 분별하여 하나의 선으로 깨우치기는 했으나, 그 미약한 부분까지 논변하고 증명할 수는 없어서 '빛이 있고 없는 그 사이(有光無光之際)라고 말했고, 불교에서는 그 즈음(사이)에 임하는 것을,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았다(不卽不離)고 말했다네. 그러므로 그즈음에 잘 처신함은 오직 도를 아는 사람만이 능히 알 수 있으니...“
뭐 이런 식의 글이다.
기운(氣運)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중국마을의 시골 훈장인 富선생을 만나 대화를 하려다가 상대방의 무식함과 무례함에 대해 불쾌감과 실망감도 이야기 하고 책 내용이 끝이 없었다.
벽돌을 쌓는 법도 나오고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 이야기도 나오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통곡하고 싶다고 하자 왜 그러냐고 동행이 묻자, 연암은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칠정(七情)중에서 오로지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 만하며, 미움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 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네. 통곡소리는 천지간에 우뢰와 같아 지극한 감정에서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온 소리는 사리에 절실할 것이니 웃음소리와 뭐가 다르겠는가?...“
어찌 보면 요설같기도 하고 궤변같기도 하지만 생활 자체에 깊은 사유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그런 대화가 끝없이 이어져 나온다.
술집에서 본 이런 깃발도 읽고 기억해 낸다.
聞名應駐馬(문명응주마) 이 집의 명성을 들은 자는 응당 말을 멈출 것이고
尋香且停車(심향차정거)술 향기를 찾는 사람은 장차 수레를 세우리라.
연암의 천재성과 박람강기에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