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일기亡命日記 4

by 우인

망명일기 4


어린 시절,

내 마음 속을 차지하고 있던 화두는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였다.


이때만 해도 도무지

내가 한국이라는 곳에서 태어 나고

또 서울이라는 정글같은 곳에서

살아야 하는 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족보에 집착하고

나의 뿌리캐기에 열중하였다.


뭐, 해답은 못 얻었었지만

나의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책과 더불어 빠졌던 것이

나라만들기였다.

역사에 관심을 갖고 족보를 뒤지고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 역사의 왜소함에 약간은 실망할 때였다.


아마 고2 였을거다.

학교에 가서는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집에 와서는

나의 나라를 건국하였다.

나라 이름은 <純>이였다.


왜 우리나라 이름은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발해, 가야 , 부여등

두 字 아니면 세 글자이고.

중국은 진, 한, 초, 수, 당, 양, 송, 금, 원, 명, 청, 제, 오, 촉, 위 등등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상상 속 나의 나라는 <순純>으로 정했다.

연호는 홍유(弘宥)였다.

이 연호를 지으려고 중국의 많은 연호를 참고했다.

이것도 명나라의 홍유(弘維)를 패러딘 한 거다.


책상 위에는 강희 대자전이 항상 놓여 있었고.

매일 순나라의 실록을 쓰기 시작했다. - 1년을 썼다 -

이 때 한자실력이 엄청 늘었다.


고 3에 올라가니 한문선생한테 별로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한자 실력이 늘었다.

관제官制연구도 엄청 많이했다.

당나라나 고려, 조선의 제도를 참고했다.


지금 언뜻 생각나는 그 때 내가 고친 몇 개의 제도

강원도 관찰사를 강주지사, 전라도관찰사를 전주지사

그러니까 관찰사 제도를 주지사제도로 바꾸고

사민정책(徙民政策)을 써서 국민을 만주로 이사 보낸 정책,

그리고 세계에 함대를 파견한 것

당시 배우던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신문을 읽고 참조한 미국이나 영국의 정책을 약간 변형한 거다.


그리고 내가 차남이니까 왕으로 즉위하기 까지를

장황하게 기술하여야 했다.

이것이 대체역사인지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이때만 해도 그런 개념은 없었는데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란 소설을 읽고

이 때 내가 쓴 것이

대체역사(代替歷史)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려가 망하고 순나라가 건국되고

장남이 아닌 차남이 왕으로 즉위하기까지 등등이 상세히 기술되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가장 아쉬운 일은

그때 썼던 실록을 대학생때 읽고

유치하다고 불태워 버린 사실이다.


이 때 1년의 노력이 고스란히 재가 되어버리고

내 머리 속의 몇 가지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다만 그 때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젝트,

지중해 함대, 마다가스카르함대, 인도양함대 등등이 기억 난다.

나랑 가장 친밀했던 친구들을 함대의 제독으로 파견해서

함대 자체가 번국(蕃國)같은 역할을 한 거 같다.


독립된 형태이긴 하나 순나라의 체제하에 있는 그런 시스템.

육군은 군단(軍團)시스템으로 만들고

최정예는 37군단과 38군단이었다.


영의정이나 좌의정은 내 친구들의 친밀도에 따라 배치되고

사이가 나빠지면 그 친구를 해임하는 정도였다.

다만 유배는 보내되 처형은 없었다.

당시에도 인재는 소중하다고 생각했었다.

기억나는 이름이 허명, 정다두 등이었다.


내 6대손이 세계를 제패했다.

이 과정도 참 길었다.

무굴제국을 합병하고 그곳이 전진기지가 되어

헝가리군단, 폴란드군단, 프랑스군단등을 편성하여

유럽으로 진군했다. 칭키스칸의 길을 따라

순나라가 세계를 제패했다.


마지막은 대충 기억 난다.


" 제국(帝國)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인간의 행복(幸福)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제국이 인간의 행복에 방해된다면

제국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는 없다.

이로써 제국을 해체한다"


뭐,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거다.


이때 난 이상주의자였나 보다.

국가가 인간의 행복에 우선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기에

고등학생 시절은 참으로 풍요로운 시절인 거 같다.


학교에서는 문학반 동료들을 만나 책 얘기를 하고

글을 쓰고 백일장 나가고 저녁엔 집에서 실록을 썼으니

지금 시대엔 있을 수 없는 일일 게다.


참, 당시 문학반친구들의 글씨조차도 모두 비슷했다.

속으로는 서로를 질투했으나

서로 닮아가고 있었던 게다.


이 때 세계사선생이 하신 말씀이 기억 난다.

정확한지는 모르나

"구구단도 바뀔 수가 있다. 구 구 팔십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절대란 없다." 뭐, 난 이렇게 기억하는 데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선생님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흑백논리의 경계,

그리고 상대적 진리관에 대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 선생님에게 영향 받은 것이 아직도

나를 경계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거 같다.


난 항상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극과 극을 싫어 한다.

난 항상 중간 어디쯤 서 있다.

늘 비난 받기 좋은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

그래도 그게 크게 싫지는 않았다.

내 본질이기 땜에.


이 때 읽었던 수많은 책들

수많은 생각들이 30년이 지난 요즘에도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책은 참 많이 읽었나보다.

좋은 책, 나쁜 책, 내용 없는 책, 감동을 주는 책 등등, 참 많이 읽었다.


책읽기를 어느 정도 하고 나면

책읽기가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언제냐고?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할 때다.

그 때까지는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많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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