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일기 5
초등학생때 뒷동산에 오르면
벚꽃이 한창이었다.
내게 남은 어릴 적 몇 장의 사진에는
영모전(永慕殿) - 나는 이 곳을 벚꽃동산으로 기억한다.
이곳에서 아버지와 나, 아버지 친구, 아버지 친구의 딸
-아버지 친구의 딸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통통하단 느낌뿐-
그리고 아버지 회사의 여직원과 찍은 사진이 있다.
특히 아버지 친구의 딸과 같이 찍은 사진은
왜 그리 어색한지,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
벚꽃동산의 추억은 여자와 어깨동무한 어색한 얼굴로 기억된다.
어머니의 고향 多水里는
정말 포근한 마을이었다.
앞에는 江이
뒤에는 山이
감싸 앉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어머니의 고향이자 내 마음의 고향,
이곳에서 방학 때 보낸 한 달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풍요롭다.
이 곳은 배를 타지 않으면 건너지 못한다.
청령포(淸泠浦)와 같은 지형으로 보면 이해할거다.
그래서 마을이 포근하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지형이다.
여름방학이면 다수리에서
내 사촌동생과 동생친구 노마, 노마의 누나 꼬마와 놀던
그 시절이 꿈결처럼 생각된다.
다수리선 주로 물고기 잡던 기억이다.
언덕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 보며 풀피리 불고
저녁이면 달빛에 나체로 수영하던 기억이 새롭다.
달빛은 교교하게 비추고
아무도 없는 江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수영해 봤는가?
자유롭다!!
개구리들이 노래하고
가끔씩 잠이 없는 새들도 있던 거 같다.
밤에는 可山 이효석을 꿈꾸며
외가집에서 글을 썼다.
그 때는 호롱불이었다.
고 2때 전기가 들어 왔다.
삶은 감자를 먹고
옥수수를 먹고
그리고 방학이 끝날때쯤
방학 내내 잡았던 말린 물고기를 가방 가득 갖고 서울로 돌아갔다.
물고기- 붕어는 아예 버렸다. 미꾸라지도.
주로 매자, 불거지, 모래무치, 그리고 돌고기,
메기도 많이 잡았지만 난 메기는 싫어 했다.
매자나 불거지를 좋아 했다.
회사서 가끔 농담처럼 서울로 오지 않았다면
동강(東江) 근처서 빠가사리 매운탕집을 하면서 더 잘 살았을 거라고 말하곤 한다.
또한 초등학생때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들과 함께
소나기재를 지나 西江 선돌에서 고기를 잡던 그 때가 생각난다.
그 때 형이 어항(魚缸)을 들어 올리자
햇살에 빛나던 물고기들의 그 유연한 이미지는
내 머리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다.
내가 처음 6시내고향 연출을 할 때 그 장면을 재현해 봤다.
초등학생들에게 유리어항으로 고기 잡는 모습을 시키고
어항을 들어 올리면 눈부신 햇살에 펄럭이는
물고기들로 줌인이 들어가고 슬로우로 보여 주니
내 어릴 적 그 모습이 그대로 기억났다.
고향이 있는 사람은
재산이 있는 사람보다도 행복하다.
난 그리 부자도 아니고
그리 성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고향을 생각하면 부자가 된다.
동강(東江)과 낙화암(落花巖),
서강(西江)과 장릉(莊陵), 보덕사(報德寺), 봉래산(蓬萊山)
금강정(錦江亭)등 내가 숨쉬고 거닐었던 곳곳이
나의 마음을 살찌우고 있다.
비밀스런 마음이었을까?
좀처럼 이 것을 남에게 꺼내지는 않았는데
이 곳에선 예전의 그 시절이 봇물처럼 터진다.
왜 망명자라고 생각하였을까?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
아마 1990년도에 영월을 처음 방문했던 것 같다.
그 전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었다.
왜 그런 지는
아직도 불가사의다.
비의(秘意),
미지의 땅,
아마 마지노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히든카드,
영월(寧越)
편안히 넘어 가는 곳
그런 의미로 생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