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바꾸자.
자연스레 변화를 오~ 나이스!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덤덤히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된다.
평생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거나 생각이 더 이상 변화될 이유가 없는 환경에서 살았다면 더더군다나 더 그렇다.
내 가족 , 내 아이, 내가 매일 보는 사람들이 빤하면 거기서 변화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직장을 바꾸던가, 이사를 가던가, 하물며 동호회 활동(코로나 시기엔 색다른 SNS라고 생각하자)을 하면서 내 주위 사람들을 바꿔야만 한다.
같은 일을 반복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건
게으른 사람이 내일이라도 다시 성실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같다.
왜 그럴까.
내가 그랬으니까.
순종적인 직원을 원하는 사장과 아무런 문제 없이 10년을 근무했다고 하자.
사장은 당연하게도 자기의 일을 다 서포트해줘야 하는 직원 1명의 예절 바름과 순종에 흡족하고 지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가지고도 네가 많이 받는 거라며 생색 아닌 생색을 내면서..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장인 줄 아느냐고 자화자찬도 빼놓지 않았다.
그 직원은 또 얼마나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까.
사람과의 교류도 없는 1인 회사에 사장의 절대적인 힘에 눌려서 회사를 열심히 다녔다.
적지 않은 나이에 회사에 있다는 안도감과 흡족함을 느끼면서.
그러던 그 직원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자본주의란 자본가가 되어야만 그 상위 포식자가 되고, 그래야만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그 포식자는 직원이 잘 되길 절대 바라지 않는다.
자신도 상위 포식자이면서 이 울타리를 나가면 얼마나 세상 살기 힘든지에 대해서 설파하고 논증하려고만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장의 그 이야기가 얼마나 개소리인지 아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장이 이야기한 세상은 그 사장에게 최적화된 세상이었다.
그리고 사장은 자기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네가 얼마나 나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인지 각인시켜줬다.
책임과 일은 나눠 갖지만 이익은 자기 독차지였다.
자기가 얼마나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지 집중할 뿐
직원이 얼마나 자기에게 도움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위치에서 자기 일만 하고,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게 우리네 회사다.
사장은 자기 회사처럼 생각하란다.
그리고 십만 원 주는 것도 엄청 아까워하면서.
회사가 어려워서 올려주지 못하는 것도 다 경기 탓이고 나라 탓이다.
자기가 경영을 잘못한 건 없다.
해방둥이로 그 세상을 산 사장들의 머릿속은 온통 자기의 이익에만 다 맞춰져 있다.
그걸 자기는 생활력이란 말로 포장하면서.
세상이 바뀌었는지 모르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이 성실함과 꾸준함과 부지런함으로 포장되었고
매출 저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한 달에 300만 원짜리 리스 차를 타는 것은 자유다.
손님에게는 자신의 종부세 때문에 이익을 더 봐야 한다고 속물스러운 영업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없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늘어가는 오지랖과 헛소리는 감출 수가 없다.
원래 인성이 나쁜 놈은 나이 들어 더 나쁜 놈이 된다.
그걸 나이 탓을 하면서 세월 탓을 하면서 감추기엔 속성이 하급이다.
변화가 전혀 없다는 것은
올곧고 바르다는 게 아니다.
한결같다는 말이 이럴 때는 미덕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이 느껴져 가슴을 때릴 때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 말로 '고인 물'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나이가 먹는다고 무조건 고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배려와 생각의 넓이는 그 사람이 가진 마음의 폭이다.
그 정도의 폭으로만 살았다면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상에 대한 감사보다 나 자신의 잘남에 항상 기특해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모여 살고 있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 한 트럭 속에서도 절대 변화는 없다.
사람들을 바꾸고, 환경을 바꿔야만 내가 원하는 세상이 온다.
치열하게 원하면 어딘가에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살고, 만날 수 있다.
같은 곳을 매일 보지 마라.
방향성을 갖되,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잊지 마라.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