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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불안함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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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5. 2021
6개월 이상 우울증약을 끊었다.
잘난 척하는 정신과 의사도 보기 싫었고, 아이와의 대화가 전혀 안되는 상황에서 내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느껴졌고, 모든 화살이 나에게로 오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문제가 생겼다가 다시 문제가 없어지는듯 하지만 흙탕물을 저지래 하고 나서 나오는 맑은 물은 어딘가의 다시 일어날 흙더미를 품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작은 불안감들이 모여서 사그러 지는 것이 아니다.
크게 마음먹으라고 하고, 크게 생각하라고 말은 쉽다.
작은 것들이 있어야 큰 것도 가능하다.
하루하루를 잘 지내야 1년을 잘 지낼 수 있다.
내가 잘 살아야 가족도 가능하다.
1년간 내가 견뎌온 것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가족들로부터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던 것은 나의 불안과 고통을 어딘가로 몰아 넣고 싶어서였다.
불안할 틈이 없는 시간과 공간으로 나를 몰아세우고 싶었다.
이렇게 있는 상황이 복에 겨운 상황이라서
내가 너무 모자라고 부족해서
또는 능력이 없어서이지 않을까.
대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내 상황을 핸들링 할 수 있을때,
아니면 그걸 다 감수하고서라도 견딜 마음이 있을때 가능한 것이다.
감당의 그릇은 멘탈이라고도 한다.
멘탈을 키우려면 내가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내가 나로서 살아지지 않을까 하는 판단 때문이었다.
나도 살려고 노력했었을 뿐인데,
가족들은 너는 1년간 너무 가족 모두를 등한시 했다고 이야기 한다.
책임을 남편이 지고, 모두 판단내리기 시작했다.
난 할일이 없었고, 애들에 대해서 아는게 자꾸만 줄어들었다.
남편의 배려심이 너무 고마웠다.
난 밥을 하고 , 저녁에 애들 챙기는 것을 하면 되었다.
그게 내가 당연히 받아 들여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사무가 너무 과중하였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이제는 남편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
애들도 힘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도망치려고 했던 순간부터일까.
아님 그 이전부터일까.
어제 아이가 친구만난다면서 5시간동안 연락을 받지 않았다.
오겠다는 시간으로부터 3시간을 넘겼다.
집을 나갔던 때가 생각이 나면서 다시 불안해졌다.
다시 내 불안을 끄집어 내어서 나를 괴롭게 하는 아이가 너무 싫다.
연착륙하려던 내 감정들이 수직강하한 채로 비행기 동체가 절반으로 쪼개진 느낌이다.
순간 나는 너무 화가났고, 분노했다.
오늘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힘들었던 10년전 그때 내가 우울하고, 괴로웠노라고
내가 너무 아픈 걸 누군가 알아달라고 이야기 못한 것이 죄가 아닐까 싶다.
그때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지금의 우울증은 10살짜리다.
너무 많이 자랐는데 그걸 너무 모른체 했던거 같다.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때
댓글을 보고 눈물이 솟아났다.
그래.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거구나.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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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 자체를 이야기 합니다. 별건 없습니다. 정제된 언어로 생각을 말하고 싶습니다. 멋지게 삶을 살아가야 할 중년에 대한 글을 씁니다. 중년의 인사이트와 지혜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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