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녀는 친구를 만난다며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하고 거울을 보며 자신을 자꾸 들여다본다.
밖에만 나가면 경계를 하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즐기면서도
두려워한다.
고2가 된 그녀는 공부에 대한 마음을 거의 접은 듯하다.
남편은 이제 많이 좋아졌다고 했지만
다니던 학원을 원장이 맘에 안 든다며( 원장이 이상하긴 했음) 때려치우고
영어학원도 곧이어 카드 취소를 날리고 돌아왔다.
남편이 그동안 무엇을 노력하고 지키려고 했는데....
사실 난 그간 많은 일들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고,
감정을 쏟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이 많이 줄었고, 나는 내 나름대로 내 관심사를 파고들었다.
아이들은 아빠와 상당히 친해져 있었다.
한번 서클에서 멀어진 나는 그 안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서먹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나 자신이 현재 그렇게 편치는 않기 때문이다.
내 관심사에 정성을 들일 수록 아이들과 하는 시간이 왜 그리 아까워질까.
밥 하는 시간도 괴로워졌고, 힘들고, 재미 없어졌다.
전에는 맛있게 먹어주던 애들이 이뻤지만,
반대로 갓 지은 밥만 좋아라 하는 애들을 보면 내 존재가치가 부엌데기처럼 느껴졌다.
부엌에서만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엄마의 모습.
나는 원래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전에는 밥도 하면서 통화도 하고, 아이도 업고 빨래도 했었다.
뭐든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젠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 때가 없다.
아이들도 멀어지고,
남편도 곁에 있어줘서 고맙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가까이 가기엔 애들이랑 간극이 넓다는 생각이 든다.
신경이 예민한 내가 돈도 벌고, 부업도 하고, 애들도 키우기는 역부족이란 걸 느낀다.
그리고 사실 내가 원한 삶이 이게 아니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삶의 즐거움이란 게 경제적 성취감이 아니면
다 마이너스의 삶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로라는 중앙의 수직선에 서 있지만
점점 수직선의 오른쪽 끝이 올라가면서 내가 자연스레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떨어지지 않아야
가족도 떨어지지 않을 거 같은 위기감이 든다.
불안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삶이란 게 생각보다 더 어렵다.
견딜 수 없는 물 양동이를 양쪽에 들고 운동장에 똑바른 선을 따라가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가 않다.
애들을 보는 내가 편치 않고 행복을 느낄 수가 없다.
애들과 나는 완전 다른 존재라고 생각이 들면서
애정을 쏟기엔 너무 내가 힘이 들더라..
애들이 짐짝처럼 느껴지지만 책임감이 어깨를 누르고 있어
할 일을 하느라 한 달을 저녁에 일찍 들어와서 밥을 차려주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딘가 쏘다녔으리라...
어느 저녁엔가 작은 녀석이 먹을 볶음밥에
버섯을 넣었다며 투덜대며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고 한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지만
엄마의 무관심 때문에 자기가 피해봤다고 이야기한다.
한 달 전쯤 큰애는 필러를 넣는 수술을 해달라고 한다.
왜 그러냐니까, 자기가 얼굴이 너무 못나서 급식도 못 먹을 정도라서
수술이 꼭 필요하단다.
찾아보니 위험하기도 하고 부작용도 있는 시술이더라.
안 된다고 하니 펑펑 운다.
오늘도 낮에 친구를 만나고 왔지만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왔고, 더군다나 하이힐에 얇은 스타킹으로 다닌 아이가 별로 보기가 싫다.
요즘 힘든 게 뭐냐니까 또 필러 타령이다.
저런 것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저녁이다.
왜 다른 아이들보다 늦되고 , 매일이 어렵고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왜 외모에만 그렇게 자신을 소비하는 걸까.
정신과 의사는 그걸 신경 쓰지 않을 때 비로소 좋아질 거라고 했는데
좋아지는 걸 전혀 못 느끼겠다.
어느 날 밤에 잠이 들렸는데
이렇게 자다 죽으면 참 편안할 거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든다.
그럼 목표고 뭐고 안 해도 되니까.
인생 숙제를 깔끔히 접을 수 있다는 생각에 편안함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난 책을 꾸역꾸역 읽고 눈앞에 내 공부와 숙제를 더 집중하려고 한다.
사람 죽는 게 그렇게 쉬우랴.
사람이 명이 끝나는 날에 아이들에게까지 경제적 문제로
눈초리를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더 이를 악 물었다.
내가 잘하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관계들이 생길 것만 같다.
결핍을 채우려고 오늘도 난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