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이었다.
아이가 자꾸 가출을 한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번이 3번째다. 자신이 왜 나가는지 , 왜 힘이 든 지 이해를 해주고 싶었다.
감정을 붙들어주고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었다.
근데 말은 반대로 나가거나 입을 닫게 될 때가 많았다.
그녀도 그렇다. 입을 닫는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다.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싶다거나 상대방과 이야기하기 싫을 때,
또는 할 말이 정말 없을 때다.
그녀는 남 앞에선 이야기를 잘한다.
보건 선생님, 학원 선생님, 상담 선생님 등등.
물어보면 아주 조리 있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나는 그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나?
이야기의 갑은 항상 그녀고 , 을은 내가 되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건 정해진 것이다.
조금 더 인내하고 견뎌야 하는 건 엄마다.
숙명은 변치 않는다. 그걸 반대로 하려고 하면 반동이 생긴다.
유능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작동이 아주 잘 되는 엄마.
누구 마음을 읽어주고 하는 건 잘 못한다.
누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건 없었다.
자랄 때부터 내 감정은 내가, 니 감정은 니가.
개인은 개인이라서 개인이고, 가족은 개인의 묶음일 뿐이었다.
배운 대로 하다 보니 유능하고 싶은 엄마에겐 배워할 게 더 있었다.
시간이 변해서 인공지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 아 그렇구나 하고 공감해주는 엄마가 필요했다.
내 감정을 내가 책임져 오던 나에게 좀 혼란이 생긴다.
작동 방식이 다른 두 명의 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게 맞는 걸까 싶다.
양쪽에 화살표가 그려진 수직 선위 어느 점에 내가 서 있다.
이쪽으로 가면 너무 양수로 , 저쪽으로 가면 너무 음수 쪽이다.
한쪽의 점에 다다르면 다른 직선은 한쪽으로 무한대로 나아간다.
종잡을 수가 없다. 능력이 없으면 AI 말고 그냥 파출부가 되는 게 나았다.
하지만 결코 뭐가 나았다 라는 가정은 옳지 않다.
머릿속으로는 수백 번의 과정과 결론, 다른 경우의 수가 오가지만
결코 리셋이 되거나 리로드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만약에 자꾸 매여 있으면 나의 가정법은 끝이 나질 않는다.
정답과 오답이 없는 서술형 답안을 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시간을 흐르는 대로 놔두고
내 스스로 신경세포에 스위치를 달아서 잠시 꺼두는 방법을 택했다.
대신 수많은 문제풀이의 한 과정은 잠시 남편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대한민국 남자치고는 참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빠는 자기를 또 자책하고, 자기가 이번엔 좀 더 해보겠다며 나섰다.
그래. 너도 해봐라.
이번엔 나도 좀 살아야겠다.
내일엔 또 내일이 오니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