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소년 '레이(Ray)'는 6살에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고 7살에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는다. 엄마는 ‘마음까지 장애인이 되면 안 된다. 동정 받지 말고 당당히 살아.’라고 말하며 레이가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엄하게 키운다.
방바닥에 벌레 기어가는 소리, 창문 밖 벌새의 날개 짓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타고난 청각과 손목을 만져보고 여자의 외모와 마음까지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감각으로 가수의 삶을 살아간다. 흑인, 장애인이기에 받는 모든 편견과 맞서며 천부적 피아노 연주와 장르를 초월한 음악으로 흑인과 백인 그리고 전 세계인을 감동시킨다.
동생 죽음에 대한 죄책감, 시각 장애인이라는 고통과 외로움으로 마약의 세계에 빠져든다. 마약범으로 검거되고, 자신 때문에 마약에 빠져 죽음까지 이르게 된 사랑했던 동료(애인)의 소식을 접한다. 레이는 마약 중독이 자신을 지탱해준 음악을 할 수 없게 만들 거라는 위기감에 스스로 재활하기 시작해 이겨낸다.
약물 중독을 완전히 극복한 후 그는 활발한 음악 활동을 계속한다. 인종 차별에도 맞서고 평생 흑인 어린아이들의 교육과 예술문화를 위해서라는 소명감으로 2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기부한다. 컨트리, 가스펠, 재즈, 소울 그리고 로큰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 장르를 아우르며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설적인 음악의 거장이 된다.’
미국 가수 ‘레이 찰스 로빈슨’(Ray Charles Robinson, 1930-2004)의 전기를 다룬 영화 '레이(Ray, 테일러 핵포드 감독, 2004)'의 줄거리이다.
“난 귀가 눈이야. 무척 예민하지. 그래서 밑창이 단단한 신발을 신는 거야. 발걸음이 벽에 울리는 소리로 문까지의 거리를 짐작할 수 있도록.”
레이의 ‘실명’은 비극적 운명이다. 그는 귀와 손을 통해 세상을 보며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시각장애인과 흑인에 대한 편견,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극복해가면서 택한 마약 중독은 그가 이겨내야 할 또 하나의 고통이다. 엄마의 엄한 교육, 천부적 음악적 재능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레이가 마약 중독을 스스로 이겨내고 지혜의 눈을 뜨게 한다.
시각 장애인 레이의 운명은 소포클라테스가 쓴 ‘오이디푸스왕’에서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이 된 오이디푸스 운명과 비견된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자신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잘못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하마르티아(Hamartia, 죄란 목표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 운명을 피하고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해 결정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운명을 피해가지 못한다. 오이디푸스는 ‘당신, 지금은 볼 수 있지만 앞으로는 앞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테이레시아스’의 예언대로 실현되어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이 된 후 지혜의 눈을 얻는다. 눈에 보이는 외계 사물에 현혹되지 않고 내면의 눈을 뜬 것이다.
레이와 오이디푸스는 고통을 통해 스스로 지혜를 얻는다. 레이는 시각장애와 마약중독의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고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레이가 시각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소질이 다 발휘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레이는 귀와 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 ‘음악’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온전히 다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