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쇼팽의 나라 폴란드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 연주회에 초대받아 간 적 있습니다.
운 좋게 그의 아내 배우 윤정희님과 나란히 앉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어쩜 그렇게 피부가 좋으세요?”
“난 마사지 샵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요. 매일 요플레를 얼굴에 발라요.”
고운 미소로 답했습니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답지 않게 여들여들한 피부와 예쁜 눈은 여전히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남편 백건우의 쇼팽 야상곡 1번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의자 팔걸이에 걸쳐진 그녀의 가는 손가락은 피아노 음악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세혈관 구석구석까지 수십 년을 피아노 음악으로 가득 채워서인 지 파닥파닥 생동감이 넘쳐보였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에요.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들, 이 일상의 삶 곳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겁니다. -영화 ‘시’에서-
배우 윤정희의 고상함은 영화 ‘시’로 탄생했습니다. 시는 ‘느끼는 것이다’라는 시인의 말에 시상을 찾기 위해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 ‘시’ 쓰는 할머니는 늘 꿈꾸던 미래 모습이라 더 좋았습니다.
알츠하이머라니요……. 지독한 놈이 그 고귀한 세포에 스며들다니요.
마음 속 깊이 울음을 담고 살고 있습니다. 어젯밤엔 천둥, 번개, 돌풍에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우리도 쏟아내야 할 때인가 봅니다. 화살로 돌변할 지도 모릅니다.
다행입니다. 글을 쓰고,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쓰며 불멸의 밤을 새워도 혼자서도 사분사분 할 일이 있어 오늘도 가슴이 뜁니다. 우리 함께 왁자지껄, 하하 호호 눈물 나도록 웃을 겁니다.
우리는 쭉 이렇게 살아갈 겁니다.
-2019년 11월 단풍이 길 위를 포장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