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국내에 덜렁 남겨졌다. 두 아들이 해외에서 공부 중인데 남편마저 해외 근무로 떠났다. 혼자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25살 어린 나이에 결혼해 연년생 아들과 이동이 잦은 남편의 직장 때문에 결혼 1년 후 그만두고 내 삶을 반납하고 살았다. 서울에서 강원도,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많은 이사를 하며 오직 가족의 건강과 아이들의 교육에만 집중하는 삶이었다. 어느새 인생의 반은 지나고 있고 나 자신을 위해 해 놓은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남편 내조와 육아가 헛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그동안 생각해 보지도 않고 산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언젠가부터 이게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이 생긴 서른 한 살의 저널리스트 리즈. 결국 진짜 자신을 되찾고 싶어진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정해진 인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보기로 결심한다. (네이버 영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았다.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는 자신의 원하는 삶을 위해 이혼까지 하고 여행을 떠났다. 나는 이미 너무나도 자유로운 몸.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여행이었다. 그런데… 혼자 떠날 자신이 없었다. 어떤 목적이 있다면 혼자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현듯 어릴 적 작가가 꿈이었다는 생각이 났다. ‘혹시 여행작가라는 게 있나’ 인터넷에 쳐 보았더니 여행작가학교 모집 광고가 떴다. 너무 놀라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에게 필요한 과정이 있다는 사실이 꿈인가 싶었다. 2011년 현재 많은 이들이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4년 정도(2006년~2009년) 해외에 살다 보니 그동안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도 ‘여행작가’라는 것이 되고 싶었다.
2011년 3월, 여행작가 도전이 시작되었다. 쉽지 않았다. 일단 나이가 많은 편이고 글쓰기와 사진이 완전 초보였다. ‘저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하려고 하지? 인생을 정리할 때인데.’ 모두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당시 40대 후반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런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서론으로 시작해 결론으로 끝나는 글을 쓰니 머리가 답답하기만 하고 터져 나오지 않았다. 사진도 이론으로 들으니 무척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기초적이고 어이없는 질문을 서슴없이 했던 것 같다. 그런 질문들은 나를 사정없이 추락시켰다. 결혼 후 25년 동안 애 키우고 살림한 것 밖에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이력서에 단 한 줄도 쓸게 없는 평범한 주부라는 것을 그 질문들이 대변해주었다.
당시 집이 경기도 이천이었는데 서울 시청 쪽에서 저녁에 진행된 여행작가학교를 오가는 일도 처절하리만큼 힘들었다. 옆에 응원해줄 가족이 없는 것도 외롭고 슬픈 일이었다.
글을 쓰려고 하면 톱니에 기름이 없는 것처럼 머리가 뻑뻑하더니 몇 주가 지나니까 아주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동안 해외에 살면서 여행을 많이 했고 글쓰기는 하고 싶었던 일이라 어렵지만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나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과제를 하나하나 하는 일이 뿌듯했다.
3월 말에 시작한 수업은 6월 중순에 끝났다. 기를 쓰고 다녀서 지각 한 번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개근상을 받았다. 개근상! 나에게는 무엇보다 의미 있는 상이었다. 배고프고 무서워도, 힘들고 몸이 아파도 견디고 다닌 진한 땀방울이 깃들어 있는 상이었다.
여행작가의 도전이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혼자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전생에 나라를 구했느냐’고 혼자 사는 2년 동안 친구들이 부러워했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고 무척 노력한 시간이었다. '나를 위한 제2인생을 살아보겠다'고 링커 투혼도 불사하며 견뎌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행작가로 돈까지 벌 수 있으려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여행작가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기존에 여행이나 사진에 관련된 일을 하지 않고 초보로 시작한 사람의 90% 이상이 교육만 받고 흐지부지 된다.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늘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여행작가가 되기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시당하는 것 같은 자괴감을 벗어나기 위해 몇 년 동안 기를 쓰고 노력했다.
여행작가 도전 한 지 거의 8년 만에 여행 글과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나를 위한 삶이 드디어 시작됐다. 매일 혼자있어도 꾸준히 할 일이 있고 책읽고 공부할 게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글쓰기는 치유의 효과도 뛰어나다. 남편 내조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늘 우울하고 삶이 만족되지 않은 괴로움이 싹 사라졌다.
120세 시대에 퇴직을 하고도 살아야 할 날이 많다. 30여 년을 직장인으로 살고 나면 자신의 취미가 무엇인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전업 주부로 살아온 거의 대부분의 중년을 넘긴 여성들도 '하루가 지루하다, 우울하다'를 입에 달고 산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경제적인 것만큼 도 중요하다. 요즘은 70대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도 많다. 최대한 빨리 고민하고 도전해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매일 새롭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