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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든데 부모님 용돈을 꼭 드려야 하나!

by 여행작가 히랑


이렇게 힘든데 부모님 용돈을 꼭 드려야 하나!


20160810_j20.jpg (억만장자인 미국 전기차 '테슬라' 대표 일론머스크는 모델인 어머니에게 어떻게 해드릴까? 사진은 구글에서)


이번달부터 시어머니 용돈을 더이상 드리지 않아도 된다. 몇일 전 시어머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님 곁으로 가셨기 때문이다. 남편 직장 생활 후 첫달부터 30여년 넘게 단 한달도 빠트리지 않고 시부모님 용돈을 드렸다. 80년 대 3만원부터 해외 근무시에는 50만원, 최근 요양병원에 계셔서 30만원까지 아무리 쪼들린 상황이라도 월급 첫날 무조건 보냈다.


"아버님은 저희가 드리는 용돈을 단번에 다 쓰시는 것 같아요."

결혼 후 2년 정도 지났을 때 시어머님께 조심스럽게 한 말이다. 연년생 아들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 월급으로 살게 되었고 매달 드리는 부모님 용돈이면 1주일은 넉넉히 살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애들 둘 키우느라 이렇게 돈 나갈데가 많은데 부모님은 별로 쓰실데도 없어보였다. 더구나 시아버님은 기분파셔서 박봉에 소중하게 드리는 용돈을 단 한끼에 쓰시는 것 같았다.

"너희가 아버님께 용돈을 드리고 나면 어디다 쓰시든 지 신경쓰지 말아라. 그건 아버지 돈이다."

어머니는 간단하게 답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래, 맞아.어차피 드릴거면 신경쓰지 말아야지.' 그 이후 불손한 마음은 없어지고 부모님 용돈은 당연히 드리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남편이 결혼 후 부모님과 누나들 생각하느라 마음이 나에게 완전히 오기까지 15년은 걸릴 정도로 효자중의 효자이다. 그동안 부부 싸움을 한 이유는 거의 남편이 식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 발생한 일이었다. '효자 남편과 살면 힘들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일게다.

많는 잔잔한 일들은 이제 다 잊었는데 부모님 용돈과 관련되어 잊혀지지 않은 한 사건이 있다.

2000년 대 초 해외 근무를 떠나기 전달 월급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동료 부인에게 전화해서 '이번달 월급이 왜 줄어들었는 지' 묻기도 했다. 알고보니 남편은 어머니께 10만원 씩 드리던 용돈을 해외에 나가있는 동안 50만원씩 어머니 통장으로 이체되도록 중앙공제로 신청해 놓았다. 그러니 통장에 아예 50만원이 줄어든 월급이 입금이 된 것이다. 남편이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한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서운하다. 그렇지만 정작 그때는 별로 싸우지 않았다. 해외 나갈 준비하느라 너무 힘이 들어서 싸울 힘도 없었다.

최근 몇년동안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위해 30만원씩 보내면서는 늘 미안한 맘이었다. 둘째 형님이 아프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도 매일 다니며 돌보시는데 달랑 30만원으로 때우는게 늘 죄송했다.

이제 어머님이 가셨으니 더 이상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용돈 드릴 형편이 되는데 안계신다. 울적한 맘이다.


두 아들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달부터 매달 용돈을 10만원씩 받고 있다. 아빠가 하신 것처럼 아들들도 해야된다는 우리 가족의 교육철학이다. 아들들도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듯 했다. '부모님은 생활이 어렵지도 않은데 얼마되지도 않은 월급에서 용돈을 드려야하나'라고 아들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들이 주는 용돈을 받을 때는 금액에 상관없이 너무 기분이 좋다. 키운 보람도 있고 뿌듯하다. 돈이라기보다는 '부모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는다. 돈을 쓰지 못하고 간직하며 봉투를 들여다보고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곤 한다. 아마 우리 부모님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들에게 받는 용돈보다 아들에게 베푸는 돈이 더 많이 나갈 수 있다. 내리 사랑이라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힘든데 부모님 용돈을 꼭 드려야 하나?'라고 요즘 젊은이들이 생각할 수 있다.

자식들은 알아야 한다. 지금 '형편' 운운하면서 못드리면 20년, 30년 후에도 역시나 못드린다. 부모님은 성공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1이 가면 10이 되어 돌아온다는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아들들에게 계속 용돈을 받고 싶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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