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호수같은 나라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
굶주림에 지친 스필만은 폐허가 된 바르샤바 시가지 속으로 들어간다. 폐허 속에서 음식을 구하던 스필만은 오이 피클이 담긴 큰 통조림을 발견한다. 통조림을 딸 기구를 발견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한 집에서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들려온다. 월광소나타를 배경으로 바르샤바가 불타는 모습을 보여준다.
폴란드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한 영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2002년)의 한 대목이다.
폴란드는 1990년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나라이다. 약간의 침울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너무 가볍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여서 맘에 든다. 폴란드는 유레일패스가 적용되지 않아서 잘 가지 않는데 폴란드 나름의 멋을 느낄 수 있다.
바르샤바는 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되었고 폴란드인들의 옛 그림과 기억으로 완벽하게 복원시켰다. 폴란드 인들의 국가적 의지를 가지고 과거의 기록과 거의 비슷하게 재건한 그 노력이 인정되어 바르샤바 올드타운(Old Town)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어느 한 곳에 산다는 것은 여행에 있어서는 때로 나태하게 만든다. 서울 사람이 한강 유람선 안타보고 파리 사람들이 센 강 유람선 안 타본 것처럼. 폴란드에 3년 반 동안 살면서 정신없이 살다보면 폴란드를 재대로 보지 못하고 떠날 수 있기에 두 아들이 고등학생임에도 주말을 이용해 바르샤바 곳곳을 찾아다녔다. 아이들과 바르샤바를 돌아다니다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나 구 소련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하게 된다.
올드타운 가는 길에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예쁜 shop들이 많은 노비슈비아트(신세계 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성십자가교회에는 쇼팽의 심장을 간직하고 있다. 쇼팽은 평생 동안 고향을 그리워했고 죽은 후 심장을 폴란드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교회 앞에 있는 동상은 영화 ‘피아니스트’에도 등장했다.
잠코비 광장의 높은 곳에서 바르샤바를 평정하듯이 지그문트 3세의 동상이 서있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왕궁이 있다.
올드타운(Old Town)에 들어서면 아름답고 아담한 유럽의 심장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이 사람들은 사각으로 둘러싸인 올드타운 건물들을 둘러보며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바르샤바 모습을 상상해 볼 것이다.
중앙광장에는 바르샤바의 수호신이자 상징인 ‘인어동상’이 당당히 서있다. 은혜를 입은 인어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바르샤바의 수호신이자 상징이 되고 있다.
퀴리부인의 생가에 마련된 박물관에는 최초의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에 관한 자료와 유품, 실험도구들이 전시 되어있다. 박물관에 가니 초등 교과서에 나왔던 퀴리부인에 내한 내용이 생각났다. 퀴리부인의 나라 잃은 슬픔에 대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폴란드라는 나라를 그때 처음 접한 걸로 기억이 난다.
문화과학궁전은 구소련 스탈린(1955년)에게 선물 받은 건물로 바르샤바 중심부에 있다. 스탈린이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버금가는 건물을 선물 해주겠다며 지은 건물인데 폴란드인들은 좋아하지 않는 건물이다. 바르샤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박물관, 극장, 전시장이 있다.
와젱키(Lazienki)공원에는 공작과 각종 새들이 노니는 수상궁전이 있다. 와젱키는 ‘목욕탕’이라는 뜻으로 18세기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당시 귀족들의 수렵 장소였고 수렵을 마친 후 목욕을 하였다고 한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낮인지 저녁인 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우거진 숲속을 만나게 된다. 공원 위쪽으로 가면 폴란드의 자랑거리 쇼팽의 동상이 있다. 쇼팽 동상 근처에서 5월 첫 일요일부터 9월 마지막 일요일까지 오후 12시와 4시에 여름에는 매 일요일마다 무료 피아노 연주가 실시되고 세계의 여행객들이 다 모여든다. 그 멋진 쇼팽 피아노 연주회를 삼년 반 동안 살면서 한번밖에 가보지 못해 아쉽다.
빌라노프 궁전(Wilanów Palace)은 집 주변에 있어서 산책할 때 수시로 찾아가는 곳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대 저택으로 2차 세계대전을 잘 견디며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궁전은 이탈리아 시골 빌라에서 루이 14세 스타일의 프랑스 왕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녹아들어가 있고 폴란드적인 특징도 간직하고 있다. 1805년에는 폴란드 최초의 박물관이었고, 바로크 정원, 영국식 정원, 장미정원이 있다. 숲속으로 더 들어가 보면 넓은 호수에 백조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빌라노프 궁전은 하루 종일 놀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소련의 침략을 받았고 서부는 나치 독일에, 동부는 소련에 분할 점령되었다. 당시 독일이 폴란드를 제일 먼저 침공한 이유는 가장 많은 유태인이 살았기 때문이다. 유태인 박멸이라는 명분을 걸고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켰고 시작은 폴란드였다. 바르샤바 중심부에 담을 쌓아 게토(유태인 거주제한지역)를 만들고 그 안으로 50만 명의 유태인을 몰아넣었다. 그 유태인들은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저항하다 거의 대부분 죽는다. 독일은 폴란드의 정신과 사상을 짓누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도인 바르샤바를 파괴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는 500여 년간 폴란드 문화 중심지였다. 크라쿠프의 최대의 강점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주둔지로 슬픈 과거를 가진 채 전쟁의 풍파를 이겨내고 파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옛 동유럽의 모습을 간직한 중세 고성과 교회가 있는 구시가 일대는 세계문화유산이다.
구시가 광장에는 성마리아 성당이 있다. 1220년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이며 매시간 탑 꼭대기에서 나팔수가 직접 나와 나팔을 분다. 성당 안에는 폴란드 최고의 예술품으로 칭송받는 제단이 있다.
바벨성은 16세기에 완성된 왕궁이자 성곽으로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다.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과 르네상스 풍의 지그문트 탑은 예술미가 뛰어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였다.
입구부터 느껴지는 음울한 분위기에 소름이 돋는다. 박물관과 전시관에는 그때의 처절함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느꼈던 잔인함이 전시관을 돌다보면 더 실감이 나고 영화 속 배우의 두려운 눈빛이 자꾸 떠오른다.
소금광산(Wieliczka SaltMine)은 세계 12대 관광지 중 하나로 유네스코 최초로 자연 및 문화유산에 선정된 곳이다. 광산이 관광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광산노동자들이 소금을 이용해 다양한 조각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수세기에 걸친 광산 발전 과정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각종 조각품과 예배당은 광부들에 의해 모두 소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암염이 치유효과가 있다더니 소금광산에 들어가기 전 비염으로 코가 막혀 괴로웠는데 광산을 돌아다니는 동안 코가 펑 뚫리고 시원했다.
두 아들은 크라쿠프 여행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난 후라 더 실감이 나는 듯 했다.
폴란드 전통 음식으로는 딱딱한 빵 안에 고기와 양배추 절임이 들어있는 비고스(Bigos)와 만두처럼 생긴 피에로기(Pierogi)가 있다. 폴란드 음식은 대체적으로 우리 입맛에 좀 짜게 느껴진다.
폴란드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나라가 3차례나 분할되었다. 1차 대전 후 나라가 독립할 때까지 123년간 나라가 소멸되는 등의 숱한 역경을 겪었으면서도 강인하게 살아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바르샤바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한다.
폴란드 바르샤바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자주 돌아다니며 유럽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가족여행으로 또는 손님들과 함께 다녀온 크라쿠프는 갈 때마다 중세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머릿속으로 길 따라 가며 잘 익은 복숭아처럼 깊은 맛이 나는 바르샤바와 크라쿠프를 돌아보았다. 싱그런 초록빛과 중세 건물의 붉은 빛이 조화로운 그 도시 들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우리 가족의 열정을 불태우고 꿈을 이뤄간 폴란드는 내 마음 속에 유럽의 어느 아름다운 나라보다 훨씬 정이 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