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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히랑 Jul 10. 2016

(Review)영화 '피아니스트'

(Review)영화 '피아니스트,The Pianist'를 보고    


폴란드는 잔잔한 호수 같다. 모든 풍파를 이기고 잠잠해진 호수 말이다. 폴란드인 표정에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그들은 수다스럽지도 않고 활짝 웃지도 않는다. 잔잔하게 미소만 지을 뿐이다.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고 나니 그들의 잔잔함이 이해가 된다. 폐허 속에서 일궈낸 평온한 바르샤바 모습에 한 번 더 감동한다.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블라디 슬로프 스필만'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한창 타오르고 결국 라디오 방송국은 폭격을 당한다. 50만 유대인들은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 게토에 강제 수용된다. 스필만의 가족도 독일인에 의한 유대인의 잔인한 학살을 게토에서 함께 겪는다.  

유대인에게 감옥 같은 게토도 호사이던가! 나치의 세력이 확산되고 게토에 갖힌 유대인들은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모두 짐짝처럼 실려진다. 평소 스필만의 능력에 호감을 갖던 유대인 공안원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죽음으로 가는 행렬 속에서 구해지고 가족과 생이별을 한다. 그 후 가족들의 소식은 알 수 없고 수많은 유대인을 싣고 떠난 기차가 빈칸으로 돌아오고 음식물도 보급되지 않는다는 소식만 전해 듣는다.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치의 눈을 피해가며 허기, 추위와 공포 속에서 근근이 목숨만 유지한다. 은신처가 폭격당하고 폐허가 된 게토로 걸어 들어가는 스필만의 모습은 비참함의 극치를 이룬다. 스필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목마름과 배고픔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의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먹을거리를 찾던 스필만은 묵직한 오이피클 캔을 발견하고 열어보려고 노력하다가 독일군 장교를 만나게 된다. 이 부분에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스필만이 유대인임을 눈치 채고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피아니스트였다’라고 답한 스필만에게 피아노 연주를 하게 한다. 오랜 굶주림으로 앙상한 손가락은 떨리면서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연주를 어눌하게 시작하고 이내 환상적인 연주를 해낸다. 독일군 장교는 그의 연주에 놀라고 보이지 않는 교감을 하며 먹을 것과 옷을 주며 스필만의 은신을 돕는다. 

독일군이 폴란드에서 물러나고 자유를 찾은 스필만은 방송국에서 피아노를 치며 살아간다. 

스필만은 이름도 모르는 독일 장교를 찾고 싶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독일 장교 ‘호젠펠트’는 러시아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 죽었다고 영화 자막은 말한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실제 존재했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에 기초를 해서 제작된 영화이다.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실제로 폴란드 계 유대인으로 독일의 침공을 직접 경험을 했기에 영화는 더 생생함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사상을 기초로 하기보다는 독일군의 유대인 말살정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소 과장도 있겠지만 유대인은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배고픔과 질병 그리고 독일군의 총부리 앞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주인공 스필만은 유대인이고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는 것을 떠나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본능적으로 살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 심리를 보여준다. 유대인이 세계 속에서 또는 유럽에서 어떻게 살아갔던 간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홀로코스트(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을 하는 행위)가 발생하면 안된다고 본다. 그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비극이다.  

스필만이 독일 장교 '호센펠트'를 만나 피아노 연주를 한 후 독일 장교가 보여주는 인간적인 장면은 긴장했던 관객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온기를 돌게 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그 장면이 없었다면 영화 피아니스트는 미완성 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장교가 멋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다. 

스필만이 죽을 만큼 힘든 순간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의 힘이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미소를 짓고 피아노를 보자 건반을 두드리지 못하지만 상상으로 연주를 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손가락을 움직인다. 점점 파괴되어 가는 바르샤바의 모습 속에서도 피아노 음악이 있기에 영화는 더 관객을 매료시킨다. 폴란드는 쇼팽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폴란드인에게도 쇼팽의 음악은 삶의 힘이 되고 있다. 바르샤바 공향 이름도 쇼팽공항이며, 쇼팽음악학교가 있어 음악을 공부하는  많은 수의 우리나라 학생들도 유학하고 있다. 


바르샤바 올드타운


쇼팽동상

난 폴란드 바르샤바에 4년 정도 거주했었다. 바르샤바 올드타운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완전히 페허가 된 바르샤바를 거의 정상에 가깝게 복원한 정성을 감안해 인정된 것이다. 바르샤바의 예쁜 카페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유럽의 정취를 느끼며 산책했던 그 따뜻한 도시를 회상해보니 가슴이 아려온다. 그러한 아픔 때문인지 폴란드 인들의 표정은 좀 딱딱하다. 과거 123년 동안 나라를 잃은 채로 살아왔고 공산치하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잔잔한 표정의 폴란드인을 대하는 외국인들은 오히려 맘이 편하다. 너무 설치거나 친절한 척하며 바가지 씌우고 속이는 민족보다 낫다는 얘기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마음 속에 가장 가슴 찡한 영화로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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