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개인이 움직여야 세계가 움직인다. 지구의 생존을 위해 나부터 변해야 한다. ‘이 정도쯤이야’, ‘나 하나쯤이야’ 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살아왔다. 나와 나의 가족만 생각하고 걱정하고 살아오며 지금까지 잘 살아 온거야 자부심을 가진데 부끄러움을 느낀다. 작가 안희경은 세계의 석학들을 만나 국경과 민족을 뛰어 넘고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며 대안을 생각해보는 폭넓은 사고에 박수를 보낸다.
‘문명, 그 길을 묻다’를 읽고 알게 된 가장 쇼킹한 사실은 우리 지구가 50년 밖에 못 버틴다는 점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인터뷰 ‘지구는 지속가능한가?’로 시작한다. 마음이 불편하고 조바심이 인다. 우리 자식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우선 전등하나를 끄고 쓸데없이 흐르는 물도 잠갔다.
‘지속 가능한 경제는 곧 ’함께 사는‘ 경제를 말합니다. 자원이 이윤추구로 가는 구조가 아닌, 이윤을 위해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 되도록 규제하는 경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제한된 생산품의 경우 부자들의 독점이 옹호되고 부자들의 권리와 사치가 용인되면서 돈에 의해 자원이 점거되는 등의 이런 불평등은 결국 분노의 형태로 돌아올 것입니다.’
불평등의 사회와 자원 부족을 연관 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지구가 지속되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나 혼자의 사소한 생각과 행동이 세계 모두, 지구의 미래까지 연결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래미 리프킨의 재생 에너지가 중심이 되는 시대로의 변화, 3차 산업혁명의 언급에서 다소 숨통이 트인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방법은 있는 것이다.
‘햇빛은 매일 반짝이고 바람은 온 세상에서 불어온다. 땅에서는 지역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숲에서는 바이오매스(에너지원으로 이용되는 식물)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해안가에서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분산적이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무료로 널려있는 것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우리 모두가 발전소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3차 산업혁명이다. 인터넷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수평적으로 퍼지는 것처럼 에너지도 수평적, 협력적으로 분산하는 방식이다.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이 구축되어 에너지가 남고 모자라는 곳을 파악한 후 서로 분배한다. 남는 전기는 저장하여 나중에 사용할 수도 있고 필요한 곳에 팔 수 있게 한다. 개인도 소규모지만 발전 시스템을 갖추면 전기를 팔 수 있다. 이건 생산하고 분배에 앞서 에너지 생산과 판매가 눈앞에 있으니 개개인인 에너지를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겠다.
‘5초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가 먹지 못해 죽어갑니다. 매일 기아로 5만 7,000명이 죽어요. 세상 71억 인구 중에서 8억 4,200만 명이 기아 상태에 있습니다.’
우린 대부분의 아프리카인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굶주림 희생자의 대부분은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오늘날 농업 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지금의 두 배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문제는 초국가적 기업들이 주도하는 ‘식인적 세계질서’ 때문이다.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는 기업들 때문에 길거리로 내몰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고 기아에 시달린다.
‘세상이 경쟁 속인데 저 멀리 아프리카, 남미의 아이들의 기아까지 신경 써야 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오늘의 갈등이 내일의 재앙이 될 수 있다. 한쪽에서 일어난 문제가 곧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산업적으로 하나의 생활영역이 된 시대이다. 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보살펴야 우리의 내일에는 문제가 조금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일’인 셈이다.
맞다. 이웃도 저 강남역 주변의 수많은 인파들도 다 모르는 사람이고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곧 나의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워드 가드너 ‘미래를 위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가장 관심이 갔다.
‘창의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시기 그 누군가가 창의력을 쓰고 싶을 만큼 마음이 일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라고 창의력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성적 중심의 사회에서 사교육에 의지하고, 경쟁을 위해 스펙을 쌓느라 진이 다 빠진다. 그렇게 해서 경쟁에 이겼더라도 사회에 나가 그 쌓은 스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가! 허탈해진다.
21세기에 필요한 능력은 공감 능력, 창의력, 독창성이라고 강조한다. 발휘된 창의력과 독창성이 빛을 발하기는 깊은 물속에서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내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고…… 창의력이 펼치면 그 창의력이 빛이 나는 제도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Baccalaureate), 미국 아닌 영어권의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로 대학교에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감탄사 절로 나올 정도로 잘 된 입시제도이다. 사교육이 전혀 필요가 없고 온전히 아이가 풀어내는 문제, 어떤 아이인지 평가가 되는 문제가 제시된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독창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조바심이 나지 않도록 여러 번의 기회를 준다. 아이들은 본인이 잘하는 것을 그냥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행위 예술가 아브라모비치는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아침부터 문이 닫힐 때까지 꼼짝 않고 앉아 찾아오는 관객과 마주 앉아 침묵으로 소통했다. 716시간 동안 이어지 퍼포먼스로 도시 전체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현대인은 자연의 에너지와 연결되었던 끈을 놓쳐버렸습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도 관계를 잃었어요. 테크놀로지와 스피드가 지배하는 도시에 살면서 자신의 내면과는 소통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하게 단절되었죠. 예술가로서 제 목적이 그 순간에 깨어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거죠.’
관객 들은 아브라모비치와 함께 각자 자신의 안으로 들어갔으며 스스로를 만나 것이다. 개인의 변화와 각성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용서를 배워야 살육을 멈출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일 때 외부에 둔 직업적 목적, 목표, 당리, 개인적 사익이 아닌 착하고 순한 평화를 추구하는 본성이 드러난다는 믿음이다.
11명의 명사들과의 나눈 내용 모두 중요하지만 몇 부분만 재고해 보았다. 국내와 국외에서 연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 들이 다 연결되어있고 나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구 반대편에서 겪고 있는 문제점이 나의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더 긴장하게 만든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생활 속에서 무시하기 쉬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수평적 발전을 꽤해야 한다.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개개인을 구해야 평화가 온다. 아주 먼 미래도 아닌 50년 뒤에 살아갈 바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고 지구의 생명을 연장시켜야 한다. 세상을 하나로 만드는 인터넷은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듯이 고갈되어 가는 자원과 삭막해져가는 인간성에 또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