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 덜 마른 수채화처럼

제주 한달살기 5일차

by 여행작가 히랑

날씨가 맑다. 제주도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비 예보가 있으니 낯설고 긴 코스 말고 익숙한 성산 쪽으로 가자. 떡덩이 같은 성산일출봉이 눈앞에 턱 나타난다. 축구장 같은 분화구를 빨리 가고 싶어 달려갔으나 배꼽시계가 울린다. 간단하지만 아침 바로 먹고 나오는 길인데 또 점심을 먹어야 하다니... 제주의 5일째, 점점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게 지겨워진다. 속도 쓰린다. 조미료 넣은 음식 때문인가? 뭘 먹지? 해변 길에서 깔끔한 식당을 찾았다. 성게미역국으로 속을 달랬다.

헉! 식사 후 바로 성산일출몰을 어떻게 올라간담? 더구나 가장 더운 오후 2시 30분에.

섭지코지로 향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곳. 평평하며 구불구불한 길이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섭지코지는 코지(코지곶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는 코의 끄트리 모양 비죽 튀어나온 지형이다. 입구에서부터 눈앞에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선돌을 필두로 현무암 전시장 같은 해변, 하얀 등대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저절로 폼 잡고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 까만 현무암 사이에 붉은색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제주말로 ‘송이’라고 하는 붉은색 화산재로 이루어진 오름인데, 정상에 서있는 하얀 등대와 잘 어울린다. 등대는 철계단으로 쉽게 올라갈 수 있으며 올라서면 섭지코지의 해안 절경이 쫙 펼쳐진다. 그중 절벽 아래로 보이는 촛대 바위에는 용왕의 아들과 하늘나라 선녀에 대한 슬픈 짝사랑의 전설이 담겨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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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의 또 다른 매력은 출렁이는 바다 너머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늘 봐도 멋지다. 멀리서 멋진 모습을 뽐내고 있는 피닉스 제주 글라스 하우스(고급 레스토랑과 테라스 걷기 좋은 길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다 보면 곧 만나게 된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의 건축물이며 제주의 햇살을 그대로 담고, 제주의 바다를 그대로 품겠다는 건축가의 신념이 돋보인다. 안도 다다오 건축물이 늘 그렇듯이 역시나 건축물로 다가가는 길은 바로 가지 않고 화단을 지그재그로 가도록 되어 있다. 1층 카페에서 창가에 앉아 바다를 보며 땀을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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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소화도 되었고 더위도 한풀 꺾인 오후 4시, 성산일출봉으로 GO. 10분 거리인데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성산일출봉이 뿌연 안갯속에 갇혀 버렸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치기를 기다렸다. It was raining cats and dogs... 하늘은 온통 까맣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벗어나자 신기하게 빗줄기가 약해지고 바로 그쳤다. 이게 바로 제주도 날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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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어가 우산을 가지고 성산일출봉에 오르기 시작했다. 비 오기 전에 빨리 다녀오려고 숨을 헐떡거리며 단숨에 올랐다. 체력이 강해졌나? 전보다 쉽게 오른 느낌이다. 8만여 평이나 되는 넓은 분화구는 중앙으로 우묵 들어가 있어서 데굴데굴 굴러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분화구 둘레에는 99개의 봉우리(암석)가 볼록볼록 솟아있다. 이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고 해서 '성산(城山)', 해가 뜨는 모습이 장관이라 하여 '일출봉(日出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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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1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빼어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7월 2일 UNESCO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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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성산포는 덜 마른 진한 수채화처럼 선명하게 빛났다. 빗방울이 다시 머리를 살포시 적시기 시작했다. 우산을 펴고 서둘러 하산했다. 초록 숲, 까만 현무암과 푸른 바다가 그려진 덜 마른 수채화 위에 쌍무지개가 ‘짠’ 하고 나타났다. 어떤 화가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연이 만든 수채화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늘 가도 좋은 성산일출봉. 저녁은 성산항에서 전복뚝배기로 칼칼하게... 맛은 별로 없다.

#섭지코지, #성산일출봉, #비오는 제주, #피닉스 제주 글라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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