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강-29강)
비트겐슈타인(1889-1951)
<논리-철학 논고>를 쓴 후 철학적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고 철학계를 떠났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논리- 철학 논고-
철학은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며 말할 수 없는 것(진리, 선, 존재)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다른 철학자들이 생각을 말했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면 후설은 나는 무엇을 생각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나는 무엇인가를 말로 생각한다라는 것이다. 즉 말을 통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 없다면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언어의 한계 속에서 사유 작용을 한다. 철학은 사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유를 표현하는 문제, 언어적 문제이다. 기존 철학은 새로운 사유를 발견하고 사상을 펼치는 일을 했지만, 혼란만 가중하므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확히 구분하는 일을 해야 한다.
* 문장이 아니라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명제를 단위로 철학의 문제들을 파악한다면 복잡하게 얽힌 무제들을 다순 명료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림 이론
문장들은 세계에 있는 사실들을 모델화하여 마치 그림처럼 보여준다.
요소명제는 하나의 사실에 대응하는 하나의 명제이며, 복합명제는 요소명제가 결합하여 추상화된 명제이다. 중요한 것은 요소명제, 하나의 사실을 그럼처럼 반영한다. 하나의 사실이 ‘원자 사실’, 원자 사실을 요소명제가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그 명제는 참이다.
요소명제와 원자 사실은 서로 대응 관계이며 이게 논리적 형식이다. 언어는 사실을 논리적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언어는 세계를 표상하는 그림, 언어가 세계를 잘 표상할 때 요소명제가 원자 사실을 잘 반영할 때 언어는 의미 있는 것이 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철학은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전기는 그림 이론 후기는 언어게임 이론이다. 사용되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으로 언어는 인간의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때 의미를 지닌다.
철학은 실천이다.
철학은 언어로 이루어지는 활동, 철학 또한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철학이 실생활과 분리될 때 우리의 사유는 혼란을 경험한다. 철학은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을 파악하고 그 맥락을 형성하는 규칙을 보여주라 한다.
언어를 게임, 언어에 다양한 차원이 있다.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이름이 아니라 언어게임의 상황에서 맥락을 통해 의미로 쓰이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어들을 그것들의 형이상학적 사용으로부터 일상의 사용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철학적 탐구-
언어적 오해가 철학적 문제를 야기하고 언어를 명료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삶이 무엇인지는 일반적으로 규정될 수 없고 오로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
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의 등장, 구조주의는 인간을 비롯한 사물의 의미는 하나의 개체로서가 아니라 전체 안에서 다른 것들과 맺은 관계 때문에 결정되고 그 개체가 속한 집단에 의존한다는 관점을 공유한다. 사회적 집단이나 지역, 시대가 우리 생각을 형성하고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즉 구조의 영향력 아래에서 영향을 받고 그 힘을 받아들이는 객체이다.
마르크스(토대와 상부구조), 프로이트(무의식), 니체(계보학)가 구조주의 태동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간을 만든다.
소쉬르와 구조주의
소쉬르(1857-1913)는 언어학을 통해 구해 구조주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사물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붙이면서 ‘사물의 가치’가 만들어진 것이다. 낱말은 고정된 뜻을 가지지 않는다 그 사물이 속한 사회적 구조와 관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인간이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주인이다.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구조언어학은 나는 생각한다. 언어가 제공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
실존주의 사르트르는 인간을 하나의 현상, 개별자로 봤다. 역사적 상황에 던져진 나를 기준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탐구하는 존재가 실존, 구조주의는 보편적 인간을 상정하고 사유한다. 인간은 특정한 구조에 던져지고 구조에 의해 규정되고 만들어 짐을 강조했다.
사르트르는 결단에 대한 역사의 심판을 강조, 레비스트로스는 역사는 그것에 관심을 가진 집단이 만든 기준일 뿐이다.
구조주의는 소쉬르에서 시작되고 레비스트로스(1908-2009)가 인간 생활과 사유로 끌고 왔다.
인류학의 레비스트로스, 계보학의 푸코, 정신분석학의 라캉, 문학이론가 롤랑 바르트는 구조주의 사총사이다.
레비스트로스 연구의 중요한 키는 근친상간 금지이다. 인류 최초의 규칙이며 이를 매개로 자연의 상태를 지나 문명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근친상간 금지로 여자 교환이 이루어지고, 언어, 재화가 교환되며 사회가 형성된다.
증여와 포털래치(소비하다)는 사회의 존속과 유지에 도움이 된다.
분류는 세계를 알아가는 방법이다. 인간은 분류를 통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사물을 이해한다. 혼돈에서 질서로 향하는 방법이 분류, 인간에게 자연과 세상에 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인생의 사고>에서 야생의 사고는 미개하거나 저급하지 않으며 감각적인 인식에 기초해서 자신의 감각으로 자연의 정보를 파악하며 이루어지고 현재의 사고는 그것과는 독립해서 과학적이고 추상적인 논리에 의존해 이루어진다. 원시적 사고는 고대에도 현대에도 유효하다.
정신의 무의식적 구조
이항대립은 서로 대립하는 요소가 쌍을 이루는 경우를 말한다. 분류는 인간의 속성이며 이항대립을 통한 분류가 인간의 정신 작용에 무의식적 구조로 작동되고 있다.
브리콜라주는 기존에 만들어진 것들을 다시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조합’이 핵심이다. 예술가도 조합으로 창작 활동을 한다. 이항대립을 새로운 의미가 창조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인간은 분류와 조합하는 과정을 거쳐 세상의 질서를 찾아내려 한다. 무질서함을 견딜 수 없어 분류의 본성이 숨겨져 있다.
뜨거운 사회와 차가운 사회
뜨거운 사회는 새로운 질서와 의미를 창조하는 일에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사회, 차가운 사회는 최소한의 에너지만으로 사회를 움직이면서 변화의 요소들을 상쇄시키는 사회이다. 원시와 현대는 우열의 관계, 미래와 문명의 관계에 있지 않다.
사회 구조가 인간을 만든다. 원시적 주술과 현대적 과학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사고하는 점에서 같다. 사물을 분류하려는 의도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무의식적 구조이다. 주술과 과학은 인간 정신의 다른 면일뿐이다.
-인간의 정신과 삶에는 그것을 만들고 유지하는 우 의식적인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주조란 인간은 무질서를 참지 못하고 분류를 통해 세상을 파악한다는 것, 증여를 통해 호혜적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의 규율과 규칙을 수용하면서 인간으로 탄생한다는 것 사회 구조가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미치게 친절한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