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터키의 소소한 생활

by 여행작가 히랑

터키의 소소한 생활


새로운 곳에 가면 항상 마음이 설렌다. 터키 앙카라는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하는 해외생활이라 더 기대 되고 한편 두렵기도 했다. 1991년 터키로 남편이 석사과정을 간다고 하니 터키가 어디 있는 나라냐고 친구들이 물었다. 요즘 터키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나라지만 그 당시는 터키를 잘 알지 못했다. 앙카라에 도착하니 별천지 같았다. 여름이라 매일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고 먹거리가 풍부했다. 출국 전 시부모님 사시는 아파트에 우리 이삿짐을 한 방에 집어 넣어놓고 10개월을 함께 살다 해외로 나왔으니 나에게는 그 어디라도 천국일 터였다.

외국에 나가면 먼저 살아온 한국인에게 그 나라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을 듣는 것이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 나라 재료로 어떤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느냐도 굉장히 큰 관심사이고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앙카라에 가자마자 유학생 부인에게 7년을 터키에서 살면서 쌓은 노하우를 하루 만에 전수 받았다. 어디에서 뭘 사고 어느 식당이 뭐가 맛있고…….

터키 사람들은 친절했고, 터키어도 우랄알타이어로 우리와 어순이 같아 배우기도 쉬워서 그동안 살아온 곳처럼 편했다.

터키는 주식인 빵과 과일, 고기, 요구르트와 올리브 등이 저렴하고 맛있다. 과일은 지중해와 에게해 근교에서 주로 재배되며 여름에는 멜론, 복숭아, 씨 없는 청포도가 특히 맛이 좋다. 유럽인들은 싸고 맛있는 터키 과일을 먹기 위해 일부러 관광을 오기도 한다.

에크멕(Ekmek, 빵)은 터키인의 주식으로 유럽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맛있는 빵이다. 빵은 매 식사시간 전에 새로 가져오며 동네 작은 가게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우리의 식탁에 김치가 있듯이 터키의 식탁에는 항상 요구르트가 있다. 처음에는 우리 입맛에 너무 시다는 느낌이 들지만 요구르트에 말랑한 복숭아를 잘라 넣고 꿀 한 수저를 넣으면 굉장히 맛이 좋다. 요구르트에 물을 희석시켜 만든 아이란은 터키의 굉장히 좋은 음료이다. 달콤한 음료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좀 짭짤하고 낯선 맛이라 꺼리기도 하지만 자꾸 마시다 보면 갈증이 가시고 속이 편안해 아이란의 매력에 쏙 빠진다. 소고기와 양고기는 저렴하고 맛이 좋으며 그들은 주로 숯불에 구워서 먹는다. 이슬람 문화라 돼지고기는 팔지 않는다.

배추와 생선은 가을, 겨울에만 살 수 있다. 배추가 없을 때는 양배추와 레디시로 김치를 담아 먹었다. 배추가 나오기 시작하면 야채 가게 배추를 몽땅 사서 김치를 담아 여름 내 못 먹은 김치로 배를 채웠던 기억이 난다.

터키 생활이 천국 같다는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니 생활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3, 4세인 어린 두 아들은 새로운 환경을 낯설어 해서 어린이집도 보내지 못했고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신세였다. 어린 애들 둘 데리고 외출 할 수도 없었다. 동화책 보고 숫자 도트카드를 가지고 노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작은 어린이집처럼 스케줄을 짜보았다.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도 추가하고, 놀이터 가서 놀고 집주변을 손잡고 걷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를 점점 알차게 보내게 되고 답답함도 사라져갔다.

앙카라에서 집이 이슬람 사원 바로 옆이었다. 사원에서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시간을 알리는 ‘에잔’(Ezan)이 울린다. 에잔은 이슬람 성직자 ‘이맘’이 직접 부른다. 사람들은 사원에 가서 기도하고, 어떤 이는 일터에서 자리를 깔고 메카가 있는 방향으로 앉아 기도한다. 우리 두 아들에게 말해줬더니 ‘에잔’이 울릴 때마다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이슬람의 라마단(Ramadan)은 한 달 정도 금식하는 기간이다. 정상적인 성인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음식과 물을 먹지고 마시지도 않는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억제하는 고통의 체험을 통해 경건하고 절제된 생활을 연습하는 동시에 불우이웃에 대한 지원 활동을 확산시키려는 것이다.

터키의 바이람(Bairam)기간에 시바스(Sivas)에 사는 남편 친구가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바이람(Bairam)은 라마단(Ramadan)이 끝나고 3일 동안 갖는 축제기간이다. 우리나라 명절처럼 모든 가족들이 모이고 희생양으로 소나 양을 잡아 받친다. 우리가 방문한 집은 양 대신 소를 잡았다. 희생물을 바칠 때 소유자(남편 친구 아버지)가 칼을 잡는다. 동물 목을 식도, 기도와 동맥을 절단해야 하며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예리한 칼로 단번에 자르는 것이 보통이다. ‘알라의 이름으로 자르며,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고백을 한다. 중요한 순간은 무서워서 보지 못했지만 소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희생되었다. 피를 이마에 바르거나 주위에 뿌리기도 한다. 소 한 마리의 고기는 누구에게도 팔 수 없고 온 가족과 친척들이 나누어 가졌다. 집에서 피데와 바클라바(Baklava, 디저트)도 만들었다. 터키 가정에서 직접 만든 음식은 시중에서 사먹는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남편 친구 가족들이 우리가족을 특별대우하며 얼마나 잘해주는 지 오래 있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터키는 전통적으로 손님을 위한 사랑방도 있고 굉장히 환대를 해준다. 갑자기 온 손님이라도 꼭 식사를 대접해서 보내는 게 예의라고 여긴다.

한번은 터키 지중해 쪽 여행을 하다가 차가 고장 난 적이 있었는데 차 정비소 사장 집에서 3일 동안 머무른 적이 있다. 그 집에는 깨끗한 방과 침구류가 준비되어 있었고 식사를 매번 잘 차려주었다. 그리고 차 정비한 값 외에는 돈을 더 바라지도 않았다. 터키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훈훈한 경험이었다.

석사 논문을 마치자 교수님은 남편에게 자신의 여름별장 열쇠를 주었다. 남편이 2년간 공부하며 교수님을 잘 모시고 다녔고, 정이 들어서였다. 별장은 터키 남부 ‘다짜’라는 곳에 있는데 지중해 마르마리스(Marmaris)에서 꼬불꼬불 멀미나는 길을 2시간 정도 더 내려가야 하는 곳이다. 예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우리도 예쁜 집을 차지하고 1달을 보내게 되어 지중해의 부자가 된 듯 행복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은 바닷가로 산책 다녀오면서 싱싱한 생선을 가져왔다. 터키 인들이 먹지 않는 가오리, 철갑상어와 그물에 걸려 팔 수 없는 생태를 어부들에게 얻어 왔다. 여름이라 생선 구하기도 힘들어서 기분 좋게 생선을 다듬어서 맛있게 요리해 먹었다.

“아직 생선이 많은데 뭘 또 얻어 와요?”

“그냥 주는데 받아와야지. 싱싱하잖아. 한국에서 이런 생선 먹기 쉬운 줄 알아?”

“더 이상 냉장고에 넣을 곳이 없어요. 고추장이나 간장도 없고요. 여긴 시골이라 아시아 음식 파는 곳도 없고. 휴양지에 와서 생선 다듬고 밥해먹느라 해변 갈 시간도 없잖아요.”

생선 얻는데 재미를 붙인 남편은 아침마다 어부들에게 다녀왔다. 부엌과 냉장고가 생선으로 넘쳐날 지경인데도 남편은 생선을 계속 얻어왔다. 매일 오전 껍질 벗겨 다듬고, 회쳐서 먹고, 튀겨먹느라 매일 바쁘고 바빴다. 명색이 여름 별장에서 휴가 중인데 매일 생선과 시름 할 수 없는 노릇, 하루 한번 씩은 애들과 숙제하듯 바닷가에 다녀왔다. 갓 잡은 생선을 그리 실컷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싱싱하니까 어떤 생선이든 맛이 좋았다. 여름별장에서 생선다듬기의 달인이 되어오는 여자는 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한국과 터키는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라고들 말한다. 1950년 한국 전쟁 때 참전해 피를 흘려가며 터키 군이 한국을 도와주었으므로 그들 전통에 따라 피로 맺은 형제로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축구를 하며 돈독한 정을 나누기도 했다. 터키인들은 ‘Koreli',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좋아한다. 터키어를 말할 줄 알면 더 좋아하고 물건 살 때 바가지도 씌우지 않는다. 어느 나라든 가고자 하는 나라 언어로 인사, 숫자, 형용사 몇 개만 알고 가면 다니기가 훨씬 쉬워지는데 특히 터키는 더 그렇다.

해외에서 사는 일은 항상 새롭고 낭만적일 것 같아도 대체적으로 외롭다. 음식문화도 달라 한국음식을 어떻게 만들어 먹어야하나 늘 고민한다. 터키에서 2년 동안 남편은 공부하느라 고생했고, 난 내조에 연년생 아들 키우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터키 사람들이 친절하고 먹을거리가 풍부해 쉽게 적응하며 살았다. 요즘은 터키가 관광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그 곳에 살다온 경험이 더 귀한 느낌이 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