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un Leymet Mar 11. 2021

지긋지긋한 착하다는 소리

            내가 어린이였을 때는 착하다는 소리 좀 들었다. 또래 친구들이 나보고 착하다고 한 기억은 딱히 없고, 부모님 친구들이 그러셨다. 그저 남들 자식 보면 으레 하는 빈 칭찬들이었다. 행동은 어떨지라도, 나의 내면에 분명 순하고 착한 마음이 존재 하긴 했으니까 착하다고 해주시는 말들을 허투루 듣지만은 않았지만, 그 칭찬이 그렇다고 말끔히 썩 와 닿지도 않았다. 왜냐면 속 징그럽게 썩인다는 말도 착하다는 소리만큼 많이 들었으니까. 부모님 주변 분들이 하시는 착하다는 소리가 빈 강정같이 서로 나눠먹듯이 주고받는 소리라는 걸 나중에 커서야 깨달았다. 이걸 깨달으니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착한 아이 증후군'을 조금씩은 앓고 있는 것 같다. 착한 사람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다 보니, 밖에선 실실 잘 웃는 착한 사람이 집에만 들어가면 가족들에겐 그렇게 무뚝뚝하고 날이 서있을 수가 없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혀서 나오는 고분고분한 나의 모습이, 마치 내가 너그러워서 그렇다거나 인정이 많아서라던가, 혹은 쿨한 사람이라서 태클을 걸지 않는 거라고 여겨버리는 착각의 덫에 쉽게들 걸려 넘어진다.


            20대 때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였는지, 이 착하다는 말에 알레르기라도 생긴냥 지긋지긋하게 불편했었다. 나에게든 남에게든 전달되는 착하다 하는 칭찬에 대해서 그리 납득이 될만한 이유가 덧붙여서  들린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유랍시고 텅텅 소리를 내며 딸려오는 빈 깡통 같은 소리들의 레퍼토리는 매번 비슷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보다 꽤 자주 들었던 해괴한 칭찬은 '조신하니 천생 여자이다.'라는 말인데, 이 말을 나는 꽤 어린 나이부터 들었다. 더하기, 빼기나 배우던 때부터 듣던 저 소리는 도대체 나보고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라고 하는 소리인가? 남편 말씀 잘 듣고 잘 떠받드는 현모양처가 되라는 소리인가?


            나 나름대로 착한 것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그에 걸맞은 사람들에게만 상을 주듯이 착하다는 칭찬을 어렵사리 선사했던 것 같다. 때라도 묻을까 아껴서 썼는데, 지나고 보니, 정의랍시고 내려놓은 것이 별것도 아니었다. 고분고분해서 착해 보이는 사람과, 실제로 선행을 베푸는 '진짜' 사람들을 구분이나 짓는 매우 이분법 적인 잣대였다. 착해 보이는 건 뭐고, '진짜'는 또 무엇이라고... 귀에 가시처럼 들리던 착하다는 칭찬이,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별 의미 없이 쉽게 주고받는 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어느덧 착하다는 말을 쓰는 횟수가 너그러워졌다. 무게 없이 툭툭 던질 수 있는 여느 일상의 단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있게 됐다.


            프랑스에 왔더니, 여기 사람들도 착하다는 말을 참 많이 쓰는 것을 발견했다. 뭐만 했다 하면 착하단다. 일상생활에서 주로 'C'est gentil.' ([쎄 졍띠])라는 표현을 쓰는데, 물건을 사고 나오면서도 잔돈을 건네주는 점원에게 '쎄 졍띠', 좁은 길에서 마주쳐서 길을 비켜주는 사람에게도 '쎄 졍띠', 생일 선물을 받으면서도 '쎄 정띠'. 한국에서 내가 이 말에 단단히 약이 올랐던 게 무색하리만치 프랑스 사람들은 입에 달고 산다. 미국 사람들이 ' sorry'와 ' thank you'를 입에 달고 사는 것처럼, 프랑스의 '쎄 졍띠'도 일종의 매너적 차원에서의 용어라고 생각하니 내 입에서도 툭툭 잘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쎄 졍띠' 하니, 상대가 고맙다며 미소를 짓는 게, 꽤 기분도 좋다고 느껴지더라.


            그렇게, 착하다는 말에서 홀가분해져 살아가고 있던 중, 아이가 태어났다. 불어의 '쎄 졍띠'로 '착하다'의 무게를 극복했는데, '쎄 정띠'가 지긋지긋하게 들리는 날이 다시 올 줄이야. 아이가 태어나서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 어르신들께서 아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하는 '쎄 졍띠'는 또 조금 달랐다. 매너 용어일 때도 많지만, 내가 어릴 적에 귀 아프게 듣던, '엄마, 아빠 말 잘 듣는 착한 행동 해야지'의 의미가 실려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착함과 전혀 관련이 없는 행동을 두고 착하라고 강요하는 이 칭찬이, 마치 아이에게, '네가 하고 싶은걸 하려고 하지 말고, 부모가 너에게 뭘 원하는지 살피고 그에 순응하는 행동을 해라'라는 소리로 들렸다.


            나는 아이에게 칭찬에 관대하려고 한다. 그리고 칭찬을 할 때, 짧더라도 구체적인 이유를 덧붙여 준다. 이유를 잃고 방황하는 칭찬은 더미가 되어서 아이를 짓누르고 착한 아이 징후군을 앓게 만든다. 그러면 또 나처럼 '착하다'는 소리를 '지긋지긋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전수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