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어린이집 단체 사진 속의 바다를 가리키며 우리는 물었다.
“어, 이건 바다네?”
바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이야.”
종종 바다는 자신을 ‘아이’라고 칭한다.
그것이 영어 i인지, 어른의 반대 표현인 아이인지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문득 르네 마그리드의 그림이 떠올랐다.
커다란 파이프 그림 아래에 쓰인 문장.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림은 파이프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파이프는 아니었다.
그건 파이프 ‘그림’이었으니까.
우리는 보는 대로 믿지만,
보이는 것이 곧 실체는 아니라는 것을
마그리드는 그 짧은 문장으로 말하고 있었다.
바다도 그랬다.
사진 속의 자신을 가리키며,
“이건 바다가 아니야, 아이야.”
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바다’는 이름이고, 아이는 존재.
지금 여기에 있는 이 따뜻한 체온,
말하고 웃고 눈을 마주치는 이 존재는
누구보다 바다 자신이다.
하지만 사진 속 ‘나’는
움직이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가 보는 ‘모습’일 뿐이다.
어쩌면 바다는,
지금 느끼는 ‘나’와, 이미지 속의 ‘나’를
스스로 구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어린 마음 안에서
이미 '존재와 상징의 차이'를
천천히 느끼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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