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빛나는 파랑새
감수성이 깊고 섬세해, 때론 유별나 보이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하루에도 열두 번, 그 아이 안에 있는 ‘깊이’를 마주하는 일이다.
그 깊이는 예민함이 되고, 완벽주의가 되고,
누군가에겐 ‘왜 저래?’가 되기도 한다.
며칠 전 심리 상담 공부를 함께하는 분이 내게 말했다.
“바다 같은 아이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요.
제 여동생도 로맨M*자였는데,
어릴 때는 언니인 내가 의지할 만큼 남다른 존재였지만
미술을 그만 두며 그 감수성을 끝까지 펼치지 못했고,
지금도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가요.”
나는 그 말이 오래 맴돌았다.
‘성공시켜야 한다’는 말 속에 깃든 절실함.
그리고 오늘 그 분은 이렇게 덧붙였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순간의 선택이었고,
사실은 이런 말이에요.
파랑새를 찾아 떠났지만,
사실 그 파랑새는 집에 있었더라–
이미 자기 안에 있는 걸 부정하지 말고,
그걸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바다의 감정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억지스러워 보이던 요구들,
짜증으로 뒤엉켜 있던 고집들.
그 마음을 고쳐야 할 문제로만 본 적이 있었던 나.
그 모든 순간에도, 바다의 감정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조금씩 내 마음의 프레임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존재를 긍정한다는 건,
모든 행동을 허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감정은 읽고,
행동은 조율하면 된다.
현실을 가르쳐주되,
아이의 마음은 꺾지 않는 것.
그게 이 아이를 지켜주는 방식이라는 걸.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이 보기엔 유별나 보일 수 있다.
다르다는 이유로, 까다롭다는 이유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숨어 있다.
그 마음을 아이 스스로 알아보고,
‘나는 이래도 괜찮아’라고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바다야
너는 이미 빛나는 파랑새야.
엄마는 그걸 누구보다 먼저 본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