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자책으로 가지 않게
어제 우연히 한 영상을 보았다.
9살 아이를 둔 한 유명 모델이,
모유수유를 두 달밖에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커다란 미안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공감이 갔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장면 하나쯤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테니까.
동시에 9년이란 세월동안
마음 한켠에 항상 미안함을 가지고 살았을 그녀를 생각하니
짠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나 역시 육아를 하면서
끊임없는 미안함과
그로 인한 자책의 굴레에 빠졌었다.
무슨 학대나 방임을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 최근,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왜 나는, 그리고 수많은 부모들은
자책을 하는걸까?
아이를 키우면
아쉬운 순간은 반드시 남는다.
그때 조금 더 안아줄 걸.
그때 일을 줄일 수 있었을까.
그때 내가 덜 지쳤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 아쉬움을
너무 쉽게 자책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 자책을
마치 부모의 책임인 것처럼
끌어안고 산다.
육퇴 후에 눈물을 훔치거나,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자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부모들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이 자책은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부모를 성장시키지도 않는다.
자책은 반성도, 책임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라면
자책 없이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완벽한 육아는 없잖아.”
“다들 그렇게 키워.”
같은 말로 덮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냥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아쉬움은 남을 수 있다.
아픈 기억도 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붙잡고
계속 나를 괴롭힐 이유는 없다.
어느 날 밤,
이따금 찾아오는 가슴 시린 장면들 앞에서
나는 이제
나에게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그땐 그랬지.
그래서,
앞으론 어떻게 살고 싶니?“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