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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ysuN Jul 17. 2015

내 생애 첫 자전거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받았는데, 자전거를 못 탄다.



      어렸을 적, 옆집 살던 대훈이는 4,5살 아이 치고는 가진 게 많았다. 그래서 나도 그렇고 동네 애들도 그렇고, 대훈이 집에서 노는 걸 참 좋아했다. 내 어린 시절 사진 속에 등장하는 세발 자전거나 씽씽이나 이런 것들 모두 대훈이 것이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세발 자전거가 너무 타 보고 싶어서, 대훈이에게 없는 아양을 다 부리며 타 보자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러면 대훈이는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아주 짧은 거리만을 허락했고, 그 거리를 넘어서거나 내리기를 망설이면 가차 없이 달려와 내 팔과 얼굴을 꼬집었다. 나는 거의 매번 울면서 자전거에서 내렸던 것 같다. 다 자란 후 이따금 엄마가 그때 얘기를 하시는데, 꼬집혀 올 때마다 너무 속상했다고 하셨다. 꼬집히면서까지 타는데도 세발 자전거를 사주지 못하는 그 상황에 더 속상 하셨다 했다.


      대훈이가 이사 간 후에는 그나마의 세발 자전거도 탈 일이 없게 됐다. 세발 자전거를 탈 나이도, 네발 자전거를 탈 나이도 지났지만 자전거에 대한 로망이나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꼬집히던 기억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익사이팅한 것을 즐기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탔고 인라인을 탔고 오토바이를 탔고 스노보드를 탔다. 어린 시절부터 있던 물 공포증만 아니었다면 서핑이나 웨이크 보드에도 도전하고 싶었었다. 번지점프도 했었다. 그 때문인지 "자전거 못타? 너가? 왜 못타?" 하며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새해 계획을 세울 때마다 딱히 쓸게 없어 "자전거 배우기"를 써넣곤 했지만 자전거는 전혀 내 인생에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나와 사귀던 남자들이 대부분 갖던 퀘스트 "이 여자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기"는  실행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애인이 기어코 그 자전거 퀘스트를 실행해 버렸다. 그 나이 먹었으면 운전면허는 없더라도 자전거는 타 봐야 하지 않겠냐며, 자전거를 생일선물로 사주었다. 뜬금없이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었다. 주문한 자전거가 오기 전까지 자전거를  마스터해두자며 퇴근 후 특훈이 시작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발 자전거를 타 봤다. 첫날은 40분, 둘째날은 1시간정도. "오토바이를 타니까 자전거는 금방 배운다." "두 시간이면 뚝딱이지"라던가 등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건 뭐 첫날부터 에러였다. 나는 사실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인 게 아닐까?-라며 "평생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을 구글에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둘째날에 장족의 발전을 하여 어느 정도 중심을 잡는 것과 몇 번의 발굴림까지는 성공했지만 확실히 무서움은 들었다. 넘어지는 무서움이 아니었다. 넘어지는 건  상관없었다. 그저 나는 자전거에 앉아 있는 그 높이가 무서웠을 뿐이었다. 내가  익사이팅한 것들을  하나둘씩 놓게 되었던 이유, 언젠가 갑자기 생기기 시작한 고소공포증. 공포증이 시작되면 높이에 대한 가늠을 할 수 없게 돼버린다. 바닥에 발이 붙어 있지 않거나 인지하게 되는 높이가 높다고 느껴지면 견디기 힘들다. 그런데 자전거를 탔을때 딱 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전거가 배달 온 날 밤,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 자전거를 옮기다가 사고가 나면서 두 발이 모두 다쳐 절뚝거리는 신세가 됐다. 앉거나 서거나 걸을 때마다 아-아-아- 거려서 애인은 나를 가오나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일이 이쯤 되다 보니 "내 생애 첫 자전거"와의  첫인상은 좋지 않다. 너무 갑자기 생겼고, 너무 갑자기 반강요로 연습을 했고, 날은 더웠고 습했고, 외근을 자주 나가는 직업이라 피곤에 지쳐 있었고, 고소공포증이 있었고, 뜻하지 않게 다쳤고. 애인은 좋은 뜻으로 선물한 건데 일이 이렇게 돼서 맘이 썩 좋진 않을 것 같고. 사실상 이렇게 되다 보니 처음엔 자전거가 꼴도 보기 싫었었다. 


      하지만 자전거가 무슨 죄야, 내 마인드가 문제지. 여전히 자전거에 대한 욕심도 없고, 의지도 없다. 게으른 사람이 욕심과 의지마저도 없다면 일이 진행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건 내 생애 첫 자전거. 처음부터 다치고 시작한 자전거지만, 이젠 꼬집히며 타지 않아도 되는 내 자전거다. 언제, 얼마나, 얼만큼을 타던 상관없는 그냥 내꺼. 그래서 천천히 연습해볼 생각이다. 천천히 연습하고 천천히 타 보고 그렇게 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뭐가 좀 괜찮아지겠지. (자전거 연습 첫 날 전에 "난 사실 자전거 천재가 아닐까? 하하하" 했던 생각에 무안해진다)


      아무튼 난 자전거를 "아직" 못 타지만 자전거는 소유하고 있다. 나 자전거 있는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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