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ysuN Jul 27. 2015

알아서 잘하네. 못할 줄 알았는데.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시점

      작년 12월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사드렸다. 건강 때문에 다니는 헬스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집이나 시장 정도만 왔다 갔다 하시기 때문에 헬스장 친구분들과 카톡이라도 하시라고 말이다. (아줌마들의 카톡 단체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가장 낯설지 않게 접근할만한 스마트폰이었지만, 그래도 스마트폰이었고 엄마는 일흔까지 몇 년 남지 않았고, 기계에 친숙하지 않았고 나는 집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스마트폰을 잘 쓰실지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간단한 건 아줌마들이 도와주시겠지 하며 일단 사드리고 봤다. 하지만 며칠 안되어 폰에 결함이 발견되었고, 그 일로 집에 두어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엄마가 "~~ 가 안돼"라고 하면 일단 집으로 가는 습관이 생겼다.


      카톡 띄어쓰기가 어려워 모든 글자를 다 붙여서 보내던 엄마가 잔 꾀를 써서 띄어쓰기  대신 "." 을 쓰기 시작했고, 스티커도 이용하게 됐고, 자꾸 내게 이상한 축복의 글귀와 그림과 동영상을 보내기 시작했다. 스팸 같은 내용들이었지만, 주기적으로 일취월장 하고 있는 스마트폰 실력에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서 엄마 폰을 훔쳐 보면 카톡에 늘어져 있는 대화창들이 나보다 많았다. 무엇보다 전화하기 어려워 소식을 궁금해하던 미국 삼촌과 대화 하고 싶을 때  대화할 수 있게 된 걸 좋아하셨다. 그렇게  와이파이가 뭔지 아줌마들에게 물어보셔서 와이파이 설정하는 법까지  파악하시고, 커피숍 같은데 가면 LTE를 끄고 와이파이를 켜본다고 하신다. (집에는 인터넷을 쓰는 사람이 없어서 와이파이가 없기 때문에 일부러 LTE가 계속 켜져 있게 설정을 해뒀다) 하지만 그렇게나 일취월장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 가 안돼"라고 하면 일단 집으로 간다. 


      "안 와도 돼~ 나중에 시간 될 때 와~"

      "(엄마는 모르니까. 엄마는 못하니까. 안 해봤으니까. 어려우니까. 엄마가 답답해하니까. 엄마가 안된다고 하니까. 엄마가 그냥 심심하지 않게 즐겁게 썼으면 좋겠으니까) 내가 가서 봐야 돼. (그래야 안심을 하지) 그냥 집에 간다고요."


      그런데 하루는 엄마가 "~~ 가 안돼. 그런데 너 안 와도 돼. 내가 대리점 가서 물어봐서 해결했어."라고 하신다. "어떻게 했어?"라고 했더니 당신께서 해결한 과정을 신나게  설명하신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어라, 엄마가 알아서 잘하시네. 못할 줄 알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전화를 끊고 콧잔등의 힘을 빼고 있는데,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 엄마에게 얹혀만 살다가 독립해서 살게 됐을 때 엄마가 "뭘 해 먹고 살 긴 해?"라고 물어보셔서 "나 이제 엄청 잘해!" 하며 신나게  해 먹은 음식 레시피를 읊었던 일 말이다. 엄마도 그때 지금의 나처럼 "알아서 잘하네. 못할 줄 알았는데."라고 하셨었다. 그때 엄마도 콧잔등에 힘을 주셨을까. 


      비록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단 한 시간도 평화롭게 있지를 못하고  아웅다웅하다 격해지고 서로를 견디지 못하지만, 결국은 뭔가가 어려워서 전전긍긍하는 꼴은 못 보겠으니 귀찮아도 도와주고 안 귀찮아도 도와주고 챙겨주고 그러고 싶은 그런 사이고, 그래도 서로의 안위에 대해 걱정은 하는 사이인 것이었다. 이건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애증의 관계라고만 생각했는데. 평생의 원수같은 관계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관계가 이젠 이렇게도 보이기 시작했다니.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성장을 지켜 볼 수 있는 시점이 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생애 첫 자전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