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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Jan 02. 2018

우울증에 왜 걸리는지 모르겠어요?

모를 수도 있지

"우울증에 왜 걸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 누군가가 비난을 받고 있던데 글쎄, 왜 비난을 하는 걸까. "우울증에 왜 걸리는지 모르겠다, 좋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된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그렇게 생각하잖아? 주구장창 들어온 소린데 왜?


난 항상 일기를 쓰고 기록을 하면서 그때그때의 발란스를 맞춰보기 위해 노력하고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주기적으로 약을 먹고 그 약의 부작용을 겁내 한다. 옆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확실히 좋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과 좋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 예쁘게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보며 "예쁘다..... ........ ...... 아.. 죽고 싶다.."라고 읊조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적도 겪을 일도 없다면 그 사람처럼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만큼 그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이야기인 것뿐이니까.


그리고 그런 말을 했다고 비난을 하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 옆에서 "난 이해해." "내가 도와줄게." "내가 있잖아"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실제로는 옆에서 우울증의 "ㅇ"만 보여도 단박에 싫어할 거다. 관심종자냐는 소리나 할 것이고 자기한테 우울이 묻을까 봐 외면할 것이다. 


너무도 쉽게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너무도 쉽게 우울증에 대해 이해한다 말하고 너무도 쉽게 나 우울증인가 봐 라고 얘기한다. 이렇게 해서 "나 우울증인데 좀 도와줄 수 있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나? 절대 아니다. 똑같다. 그저 우울증은 하나의 트렌드처럼 얘기될 뿐이지 우울증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은 그다지 없다. 여전히 관심종자고 의지박약이고 핑계인 "지랄"이겠지.


누군가 "도대체 우울증에 왜 걸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했으면 비난하지 말고 우울증에 왜 걸리는지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왜 안되는지,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갖는 것만으로는 왜 안되는지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키워드로가 아닌 진짜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울증이 소비됐으면 좋겠다.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를 보면 대뜸 말하겠지. "나도 할 수 있어."라고. 하지만 과연 그게 될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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