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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Feb 08. 2018

삐삐에서 스마트폰까지

그냥 손에 들어와 있는 것은 없다

중2 때 삐삐가 생겼었다. 나이 차이가 좀 있던 오빠가 친구의 삐삐를 얻어와해주었다. 90년대 초중반이던 그때 당시 삐삐를 갖고 있는 반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수업시간에 삐삐가 울렸다. 내가 삐삐를 잘 갖고 다니는지 재미 삼아 오빠가 삐삐를 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진동으로 하는 법도 모르고 있던 나였다. 반 아이들은 일제히 쳐다보며 "오오~"했고, 선생님조차 "오오~" 해주었지만 난 얼굴을 붉히며 삐삐를 꺼버렸었다.


고2 때던가. 시티폰이 생겼었다. 시티폰은 걸 수만 있는 핸드폰이었다. 요금도 비쌌지만 재밌는 건 이 폰은 특정 위치에서만 가능하고 걷는 등 이동하면서 전화를 하면 간헐적으로 끊기거나 아예 통화가 안됐다. 이 폰이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오빠가 해줬던 폰이었다. 삐삐 확인하러 공중전화에 매달려 있지 말고 간단하게 통화하라고. 아마 야자나 독서실 등으로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는 나에 대한 배려였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폰을 거의 쓰지 않았다. 대신 반 아이들이 사용했다. 쉬는 시간마다 애들은 내게 100원씩 내고 삐삐 음성 확인을 했다. 공중전화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 편이 빠르고 편했기 때문이다. 창문 밖으로 빼꼼히 몸을 내놓고 나서야 전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마다 애들은 내 폰을 들고 창 밖에 매달려 각자의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곤 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핸드폰이 생겼었다. 당시 송승헌 폰이라고 불렸던 삼성 폴더폰이었다. sch-800이었나. 잊지도 않는다. 꽤 비싼 편이었는데 오빠는 생일선물로 사주었고 나는 이 폰의 폴더 부분이 한쪽 떨어져 너덜너덜하게 될 때까지 썼었다. 


그 후에 바꾼 핸드폰은 로또 3등 당첨이 되면서였다. 3등 당첨되고 받은 돈이 육십 얼마쯤이었는데 핸드폰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던 때였기에 그 당첨금을 들고 핸드폰을 바꾸러 갔었다. 작고 새 하얀 폰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30대가 될 때까지 한두 번 정도 핸드폰을 바꾸었는데, 나는 폴더폰이 너무 좋았다.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은 피처폰은 나오지 않았고, 스마트폰만이 넘쳐났다. 내 마지막 피처폰이 코비라는 폰이었는데, 이 핸드폰을 사러 갔을 때 내 앞에 3명의 초등학생들이 코비폰을 고르면서 각자의 색을 고르고 있었다. 초록색만 빼고 골라가졌기 때문에 나는 괜한 마음에 초록색을 골랐다. 옆에서 보고 있던 초등학생들은 괜히 뿌듯한 표정으로 연신 내 코비폰과 자신들의 코비폰을 번갈아 봤다. 그래서 "우리 같이 사진 찍을래?" 했더니 다들 좋아해서 각자의 색깔 코비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코비폰을 초딩폰이라고 부르고 있다.


스마트폰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아이팟으로 스마트폰을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폴더폰을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스마트폰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내 첫 스마트폰은 아이폰5가 되었다. 당시의 남자 친구와 아이폰5를 선주문해서 바꾸었는데, 드디어 내가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왔다며 굉장히 기뻐해 주었던 게 기억난다. 시리얼 넘버를 잘못 입력해서 개통이 며칠이나 늦어버려 버렸던 내 첫 스마트폰. 


그 후로 스마트폰은 새 아이폰 모델이 나올 때마다 당시의 남자 친구와 또 다른 커플 이렇게 두 팀이 항상 함께 바꿔 갔다. 선구매하면 편할 것을 항상 대리점을 도장 깨듯 돌아다니며 아이폰의 행방을 찾아 헤매곤 했었다. 그게 마치 해마다 이루어지는 행사와 같았고 누군가는 "두 커플 중 누군가가 깨지더라도 이 행사는 계속 함께 하자"라고 이야기까지 했었다. 당연하겠지만 그 이야기는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의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에는 나 혼자 편하게 선구매해서 바꾸고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바꾼게 아이폰7인데.. 이상하게 한번도 가입하지 않은 보험이 가입하고 싶더라니. 출시 첫 날 바로 액정을 깨 버려서 사설에는 물량이 나와 있지도 않아 정식 A/S를 받았다. 보험이 가입되어 있어서 큰 부담은 없었다. 보험 가입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


현재 사용하는 폰은 아이폰X.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사원들이 원하는 디바이스를 교체해주는데 이번에는 내 차례가 아니었지만, 주문이 하나 더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내가 받게 되었다. 


이렇게 삐삐에서 스마트폰까지 그냥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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