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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Jun 27. 2018


옛날에, 죽는 거만 생각하던 옛날에. 나랑 비슷한 ㅅ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눈발이 먼지처럼 나풀거리던 어느 겨울날, 다른 학교로 시험을 보러 갔던 그 날에 만났다. 그 학교 입구 바위 위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지나가던 나를 부르며, 그 작은 눈을 휘어 가며 생글생글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그 친구와 나는 소울메이트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는데 모든 걸 같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그 힘이라는 것이 참으로 중2병스러운 것이었다. 언제든 함께 죽어 줄 수 있다는 최후의 동지-라는 설정이 서로에게 힘을 주는 부분이었으니까.


어느 날 ㅅ이 친구인 ㅈ을 데리고 나왔다. 누가 봐도 사랑받고 잘 자란 예쁜 사람이었다. 우리 셋은 자주 만났고 나와 ㅈ은 서로에게 첫사랑이 되었다.


어느 날, ㅅ이 사라졌다. 좀처럼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한 달쯤 뒤 나타났다. 거지꼴을 하고. 여자를 만나 그 여자와 한 달 동안 집 밖에도 나오지 않고 살았다고 했다. 둘이 같이 죽는 거만 생각했던 주제에 살아 있는 것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ㅅ이 여자와 헤어졌다.


어느 날, ㅅ은 도망치듯 떠났다. 이젠 우리 둘이 함께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지 않겠냐며 떠났다. 아니, 사실은 욕을 하며 떠났다. 이제 너 따위 필요 없으니 ㅈ이랑 잘 먹고 잘 살라며 떠났다.


그 후로 ㅅ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1년 반쯤 지나 ㅈ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나는 남았다. 학교를 다니며 사무실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날도 엑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ㅅ이었다. 전화번호가 그대로라며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끌끌 웃었다. 조퇴 신청을 하고 사무실에서 나와 ㅅ을 만났다. 이전의 거지꼴보다 더 거지꼴이었다. 어떻게 지냈는지 묻지도 않았다. ㅅ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고등어구이 백반을 사주었다. 배를 채우자 ㅅ은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왜 필요한지, 어디에 쓸 건지, 갚을건지 묻지도 않았다. 어차피 가진 돈이 많지도 않았다. 20만 원 정도. ㅅ은 머쓱해하며 돈을 받더니 떠났다.


그 후에 연락이 한번 닿았지만, ㅅ은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ㅈ은 미국에 산다. 애가 둘이다. 우리는 간간히 소식을 전한다. ㅅ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그때만큼 죽는 거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ㅅ이 가끔씩 생각난다. 죽었을까. 나 없이 혼자 아니면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죽었을까. 살았을까. ㅅ도 ㅈ처럼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렇게 가족을 만들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을까. ㅅ도 더 이상 그때만큼 죽는 걸 생각하진 않게 됐을까. ㅅ도 가끔은 그때의 우리를 기억할까. 그 기억의 나는 누구일까. 많은 것들이 궁금하고 보고 싶다. 그 작게 휘어지는 눈웃음도 보고 싶고 그 낮은 목소리도 듣고 싶다. 어떻게 나이 먹어 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가장 궁금한 건 그때와 달라졌을 ㅅ이 보는 것들, ㅅ이 듣는 것들, ㅅ이 느끼는 것들,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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