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스무살이 되기 얼마 전에 만났던 친구.
특별한 친구가 된 건 친해지고 얼마 안됐을 때 일이었다. 이 친구가 내게 "나랑 같이 죽어 줘."라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어둠의 오라가 강했기 때문일까. 누구나에게나 보이던 그 오라를 이 친구는 직감적으로 죽음의 오라라고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그 친구의 말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래. 그러지 뭐."
그 후로 우리는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친구가 됐다.
사실 나는 그 친구가 아닌 누구였어도 같이 죽어 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때의 내게 그런 제안을 하는 사람도 몇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우린 필요할 때만 찾고,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하고 싶을 때만 찾는 그런 친구가 되었다. 좋은 것, 즐거운 것을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어쩌면 정말 찾아 올지도 모를 삶의 마지막을 덜 두렵게 해줄 상대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죽지 않고 조금은 살아 볼까 하는 생각으로 성장했다. 우리도 행복해 질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가 "너 이 새끼 좀 행복해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록 겉으로는 꺼져, 등으로 막말을 했지만 욕을 안하는 내가 유일하게 쌍욕을 건네는 대상이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를 불쌍하게 생각했고, 서로가 서로를 다른 친구 관계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가능했다.
그런데 그 친구와 나의 우정이 끝났다. 이걸 우정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친구와 나의 우정이 끝났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그 친구가 페이스북에 결혼한다는 글을 남겼었다. 내게는 따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 글을 볼테니 알아서 알거라고 생각한걸까. 아니면 그 글을 보고 내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줄꺼라 생각한걸까. 내게 따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결혼 사실만을 올리고 또 사라졌다. 그리고 몇몇 웨딩 사진이 올라왔다.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십수년을 알고 지내면서 봤던 그 친구의 얼굴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지 싶었다.
그러자 이 친구가 왜 내게 따로 말을 하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먼저 같이 죽기를 요청했던 자신이 행복해졌기 때문에 우리의 우정이 더 이상 유지 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 이제는 내가 아니어도 되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이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이제서야 그 친구는 삶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내가 필요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우정은 끝났다.
더이상 우리가 볼 일도, 연락할 일도, 연락 올 일도 없을 것이다. 뭐, 그거면 됐다. 제법 만족스러운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