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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May 03. 2018

좋은 책상이었다

어제까지 내 방에 있던 책상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 외삼촌이 총각 시절 우리 집에서 대학을 다닐 때 외삼촌이 쓰던 책상이랬다. 아마도 그 책상을 오빠가 받았을 테고 어느 사이엔가 내가 쓰고 있었던 거겠지. 30년은 넘게 우리 집에 있던 책상인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책상은 뒤틀어지기 시작했지만 무던한 나는 그냥 그 책상을 썼다. 그러다 상판이 휘어지고 서랍이 잘 안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제 책상을 버려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감이 있어 또 몇 년을 그냥 두고 있다가 며칠 전 문득 책상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책상을 사진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다. 좋은 책상을 사면 오래 두고 쓰게 되고 오래 두고 쓰게 되면 이렇게 마음을 줘버려서 버려야 할 때 버리기가 쉽지 않으니까.


어제 새 책상이 집에 도착했고, 밤에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붙박이처럼 있던 책상을 끄집어내고 새 책상을 넣었다. 방에서 꺼내진 책상은 마당에 놓였다. 마당에 놓여 있는 책상을 보니 정말 꽤나 뒤틀려 있었고 낡았고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비를 맞고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안쓰러웠다. 그래서 새 책상을 담아 왔던 커다란 박스를 위에 덮었다. 


아침이 되자 아빠가 책상을 버리기 편하게 부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좋은 책상이었다."라고 말했더니 아빠 역시 "그래. 좋은 책상이었지."라고 답하셨다.


사실 이렇게 오래된 책상이 하나 더 있다. 그 책상은 창고에서 내 잡동사니들을 끼고 살고 있는데, 아무리봐도 지금 내 방에 있는 책장과 아무리 봐도 세트인 것 같다. 책장 역시 30년은 넘은 것 같은데, 언젠가는 그 책상과 나란히 놔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한 집에 매우 오래 살고 있으니 매우 오래된 가구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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