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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Apr 10. 2018

친하지는 않지만 낯선 사람은 아닌

방문자들


나는 단독주택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덕분에 우리 집이 있는 구역을 담당하는 사람들과는 얼굴 볼 일이 잦아 친한 건 아니지만 낯선 것은 아닌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다. 무심한 나는 주로 그냥 인사 정도 하지만 내가 자라는 걸 볼 정도로 오래된 분들은 친근한 말투로 안부를 물어 주시기도 한다. 특히 우체부 아저씨는 "우체부 아저씨예요~"라고 지금도 애한테 말하듯 전화 주신다. 


엄마는 주기적으로 환경미화원 아저씨에게 담배값이나 하시라며 지폐 몇 장씩을 아저씨 손에 쥐여주셨다. 그리고 우체부 아저씨나 배달 온 분들에게 잊지 않고 음료를 대접했다. 그래서 여름에는 항상 냉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요 몇 년 사이에는 택배 아저씨들과도 안면을 트시고, 가면서 목마를 때 드시라고 내가 박스로 쌓아 놓은 음료 박스에서 음료를 하나씩 꺼내 드리곤 했다. 


엄마는 "이렇게 뭘 줘야 잘해주는 거야."라고 힐끔 거리는 내게 말하셨다. 그 후에는 "얼마나 목마르겠어.", "얼마나 힘들겠어.", "얼마나 덥겠어." 등등 이유들도 다양해졌다. 다양한 이유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런 게 도리라는 거야."였다.


그걸 보고 자란 탓일까. 


본가에서 나와 3년 정도 살던 오피스텔을 떠날 때 너무도 당연하게 관리실과 경비실, 그리고 매일 복도 청소해주시는 할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이라고 해봤자 관리실에는 견과류 같은 주전부리들, 경비실에는 귤 박스와 드링크, 청소 할머니에게는 스카프 정도였지만 말이다. 같이 살던 이는 그런 걸 준비하는 것에 동의는 하면서도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왜?"라는 질문을 했었다. 글쎄,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관리비를 내고 있었지만 그 관리비는 물리적인 일을 해주는 것에 대한 응답이라면, 그 물리적인 일들로 인해 내가 알 듯 모를 듯한 도움을 받는 마음에 응답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랄까. 그냥 그동안 택배 받아 주신 것도 감사하고 변기 문제도 감사하고 매일 복도가 깨끗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고 분리수거할 때마다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며 같이 분리수거했던 그런 기억들에 대한 감사랄까. 아니, 그냥 나도 엄마처럼 그게 도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청소 할머니가 복도 청소하시는 소리에 바람같이 일어나 스카프 상자를 들고 복도로 나가 "저 이제 이사 가는데 그동안 감사했어요. 건강하세요."라고 스카프를 드렸더니 할머니는 너무 놀라시며 "어디 가든 꼭 행복하시라고." 해주셨고, 경비실 아저씨들도 모두 "더 행복해지라고. 잘 살 거라고." 해주셨다. 이런 덕담들 덕분에 내가 더 힘을 받았다면 웃길까.


다시 단독주택으로 돌아와 살면서 다시 친하지는 않지만 낯선 사람은 아닌 그분들과 다시금 마주 하고 있다. 이심전심이라고 집에 사람이 없으면 이제 어디에 어떻게 두고 가면 되는지 서로 알아서 "거기에 뒀으니까 잘 챙겨요~"라고 연락이 오는 사이. 


어제오늘 보게 되는 한 아파트의 택배 문제들을 보면서, 그들들이 이런 사이가 되는 게 어려운 건 서로 얼굴을 볼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집 앞까지 배달이 와도 대충 스치듯 보고 말고, 보통은 얼굴 볼 일도 없이 주고받는 딱 정해진 이해관계만 있다 보니 사람을 사람으로 느끼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닐까-하고 말이다. 말 한마디, 인사 한 번, 웃음 한 번. 그것들이 쌓이면 좀 더 유연해진 관계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비록 언제나 친하지는 않지만 낯선 사람은 아닌 그렇고 그런 관계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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