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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Sep 22. 2018

어느 날 인생이 엉켰다

내가 생각하는 탈코르셋, 내가 생각하는 여성영화


엄마에 의해 여성성을 강요 받아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고 항상 곱게 펴야만 했고, 여자다운 옷차림과 여자다운 행동을 유지해야만 했던 한 흑인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곱게 펴 놓은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곱슬거리며 퍼져 버릴까봐 남들 앞에서는 수영도 하지 않았고 흐트러지는 행동을 보일 수 없어 흥이 넘치는 음악에서도 춤을 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자는 누구에게나 눈에 띌만큼 직업도, 평판도 좋은 여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런 그녀 곁에는 2년이나 완벽한 남자가 함께 했죠.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청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완벽한 여자였지만, 그녀가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2년이나 만나 놓고 "난 당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겠어."라고 한거죠. 그렇게 둘은 헤어졌고, 여자는 혼란의 시간을 보내다 술에 취해 자신의 머리를 밀어버리고 맙니다.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 없던 그 긴 머리카락을 밀어 버리고 여자는 자신감을 상실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여자는 깨닫게 됩니다. 머리카락이, 옷이, 직업이, 외모가, 집안이- 그 모든 것들은 남을 위한 기준이었고 정작 자신은 그 틀에서 벗어나지는 것을 두려워 했다는 것을. 


여기서 포인트는 여자가 긴 머리를 밀어 버렸다는 것이 있지 않습니다. 그게 변환의 계기가 됐을지는 모르지만 머리가 긴 것은 여성성을 강요하는 것이니 짧게 자른다-가 아니라 머리를 기르든, 자르든, 밀든, 붙이든 어쩌든 그 모든 것은 선택일 뿐이며 본연의 아름움은 다른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된거죠. 몸매를 드러내거나 아름다운 드레스류를 벗고 유니섹스한 옷도 입어는 봅니다만 결국 그것도 자기 자신은 아니란 걸 깨닫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찰싹 달라 붙는 짧은 곱슬 머리에 몸매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을 입고 한껏 자신의 여성성과 당당함을 함께 드러내며 끝이 납니다. 


심지어 여자는 남자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이런 내용이어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있게 해준 남자를 최종 선택하고 해피엔딩을 맞이 하기 마련인데 여자는 그런 내용에는 하나도 의지 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 된거죠. 오랜만에 굉장히 쿨하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를 봤습니다. 탈코르셋이랍시고 코르셋을 또 만들어 족쇄를 채우는 것이 아닌,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신을 제대로 표현 할 줄 아는 방법을 깨달아가는 이야기가 매우 유쾌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여성 영화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딱 좋은 예가 되어줄 듯 합니다. 여성이 주인공이고 여성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여성 영화라며 봐주기보다 이런 독립 성향을 가진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그 여성을 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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