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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Aug 23. 2015

햇빛, 그늘, 바람, 수도꼭지

단독주택에서 겪은 경험과 추억을 아낀다


          나의 본가는 단독주택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그 집에서 살았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도 마당이 있고 그 마당 밖에 골목이 있고 어느 정도의 영역을 건너 다른 집들이 있었다. (그게 너무도 익숙하여 오피스텔에서 산지 3년이 지났음에도 문을 열었을 때 바로 앞 옆으로 똑같은 규격과 구조의 집들이 즐비한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마당에는 항상 햇빛이 있었다. 빨래를 하면 항상 햇빛에 말렸고, 장을 담가도 항상 햇빛과 함께였고, 여름이면 햇빛 아래 그늘을 만들어 그 아래서 대야에 담아놓은 물을 첨벙거리며 놀곤 했었다. 다 자라고 나서는 아이스박스에 맥주나 콜라를 꼽아놓고 의자에 앉아 마시며 책을 읽던가 음악을 들며 하릴없이 있곤 했다. 흔들림이 많던 내 인생의 유일한 평화구역이었다.


          마당이 뜨겁게 달궈졌다 느껴지면 마당 한 켠에 있는 호스를 집어 들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호스 주둥이를 통해 물이 콸콸콸 떨어지면 그게 좋다고 까르륵 거리며 발등 위로 부어 차가운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좋아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몸에 물을 묻히면 호스 주둥이를 가만히 움켜 쥐었다. 잘못 움켜쥐면 얼굴로 물이 뿜어져 나와 코에 물이 들어가는 것은 다반사. 컥컥 거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수압이 높아져 세고 길게 뻗어나가는 물의 감촉을 즐겼다. 마당에 있는 모든 것에, 나무에도 작은 텃밭에도 개 집에도 창문에도, 온갖 곳에 뿌렸다. 축축하게 젖어 가는 흙냄새에 상쾌함을 느끼며 좋다고 또 한번 손과 발에 뿌리고 온 몸을 물에 적시고 마당을 뛰어 다녔다. 우리 개는 그런 나를 따라 같이 뛰었다.


"또 물 틀어놨네!"


          버럭 소리 지르는 엄마의 소리에 잠깐 멈췄다가도 이내 다시 마당을 뛰어 다녔다. 이런 행동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그 크기와 형태만 바뀌었을 뿐 거의 매년 반복되었다. 


          그래서 오피스텔 생활이 처음에는 그렇게 익숙하지 못했다. 원룸 오피스텔이 다 그러하지만 한 층에도 수 많은 문이 주루룩 붙어 있고 내 머리 위 아래 양 옆 앞으로 똑같은 구조의 엇비슷한 동선으로 그렇게 있을 것 같으면 왠지 꺼림칙하였었다. 빨래를 해도 햇빛에 말릴 수가 없고, 창문도 마음 껏 열리지도 않는다. 내게 허락된 물놀이는 욕실 바닥을 청소할 때 샤워기를 세게 돌려놓고 구석구석의 머리카락을 밀어낼 때 정도의 쾌감뿐이었다. 


          그리고 점점 잊었다. 내가 본가에서 어떻게 살았었는지. 며칠 동안 본가에 머무르고 있는 지금도 잊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기억해냈다. 마당 빨랫줄에 빨래를 걸고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아 빨래를 보고 있는데 햇빛 아래에 환하게 빛나며 널려 있는 빨래들이 그렇게나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 역시 빨래는 햇빛에 말려야지. 그늘 아래 앉아 발가락만 살짝이 햇빛에 내놓자 뜨끈뜨끈 해지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확실히 오피스텔이나 아파트 쪽이 깔끔하게 살기는 좋지만, 이렇게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사는 게 역시 좋다. 나는. 이런 햇빛으로 인해 생기는 그늘과 햇빛과 그리고 미세한 바람의 감촉과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그런 주거 공간이 좋다.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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