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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Jun 02. 2019

기생충

반듯하고 깨끗한 천장


옛날에 살던-이라고 해도 불과 반년 전까지 살던 집은 너무도 오래된 집이었다. 특히나 내 방은 가장 환경이 열악한 방으로 사방이 막혀 있어서 1면은 옆 집 주방 창문과 2면은 우리 집 주방과 3,4면은 뒷마당 창고와 연결되어 있어서 온갖 냄새가 몰려들고 방안의 열기나 냄새 등은 제대로 빠지지도 않았고 항상 습했고 항상 더웠고 항상 추웠고 항상 냄새가 났다. 창문으로는 쥐가 다니는 걸 이따금 목격할 수 있어서 창문 열어 놓는 것이 끔찍했고, 사방의 벽과 천장에서 들려오는 사사사삭 소리는 평생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라면 비였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이따금 비가 샜다. 그리고 비가 많이 오면 천장이 내려앉았고 비가 그치면 다시 말라 쭈그러들며 올라붙고를 반복했다. 내 방 천장은 항상 굴곡이 져 있었다. 딱히 내색하진 않았지만 항상 두려웠다. 자다가 비 오는 소리만 들려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천장을 확인하고 눈이 안 떠져도 손을 휘저으며 물이 떨어지진 않는지 확인했다. 단순히 비가 새는 것만이 걱정되서가 아니라 천장이 내려앉으니 자다가 무너진 천장에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집에 있지 않아도 걱정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 내 방이 어떻게 돼서 내 방에 있는 내가 아끼는 것들이 모두 망가지거나 사라져 버릴까 봐,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릴까봐 걱정이었다. 미세먼지라던가 농작물 걱정이라던가 꽤나 비가 오지 않아 걱정인 때에도 비는 가급적이면 안 왔으면 좋겠고, 오더라도 잠깐이나 적게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만이 가득했다. 비가 많이 오면 시원하다느니 기분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와중에도 걱정이 앞섰다. 


그런 집이 싫어 나가서 산 것도 꽤 되었지만 결국은 돌아가는 곳이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후회할 짓을 많이 했다.


그러다 튼튼한 집으로 이사를 왔다. 언제 눈을 떠도 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멀쩡하고 반듯하고 깨끗한 천장을 가진 방에 눕게 되었다. 중간중간 나가서 살 때도 반듯한 천장을 가진 집에서 살았지만 그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내가 모든 것을 두고 사는 곳과 잠시 거쳐 가는 곳의 느낌의 차이랄까. 어쨌든 그런 천장을 가진 집에 살게 되면서부터 이제는 언제 어디를 가서도 다시 돌아와 누웠을 때 보이는 천장이 반듯하고 깨끗하다는 것, 내가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런 것이 좋았다. 그러자 비는 곧 내 신경을 벗어났다. 비가 얼마나 오는지 전혀 상관없었다. 심지어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제발 비가 밤새도록 많이 와서 아침에는 상쾌하게 출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비 온 후의 깨끗하고 기분 좋은 날씨만을 생각하게 됐고 비에 두려워하던 것들을 잊게 되었다. 그 또렷한 괴리감을 신기하게 여겼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장면과 대사에 꽂혀 있는데, 나는 그런 괴리감을 경험한 탓에 유난히 미세먼지 제로의 대사에 꽂혔다. 그 대사 한 마디와 그 전후 대비되는 장면으로 나의 그 괴리감이 표현되어 버려서 뭔가에 띵하게 맞은 듯한 느낌을 가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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