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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Jun 04. 2019

그와 그녀의 인연이 시작된 이야기


    1960년대 말, A는 월남전 파병 군인이었다. 두려움과 공포와 알 수도 없는 분노와 일그러짐이 가득했던 그곳에서 A에게 한줄기 즐거움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한국에서 날아오는 B의 편지였다.


    사실 B는 A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때의 B는 월남전에 파병 나간 사촌오빠가 그립고 걱정되어 사촌오빠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었다.


    그리운 00 오빠에게-

    라고 약간의 수줍음과 약간의 그리움과 상당량의 걱정을 담은 편지를 썼다. 하지만 그 편지는 B의 사촌오빠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 편지가 월남전 한복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촌오빠가 하늘로 가버린 탓이었다. 그래도 B의 편지는 버려지지 않았다. 누구의 편지라도 그곳의 군인들에게는 즐거움일터, B의 편지는 그렇게 A에게 전해졌다. A는 곧 답장을 썼다. 꽤나 글씨를 반듯하게 잘 썼고 약간의 글빨도 있었다.


    B에게,

    B는 사촌오빠 답장을 기다리셨겠지만 죄송하게도 저는 B가 기다리는 B의 사촌오빠가 아닙니다-


    그리고 편지는 한국을 향해 날아갔다. 그 편지가 도착하기 전, B는 이미 사촌오빠의 소식을 들어 몹시 마음에 생채기를 입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사촌오빠에게 보낸 편지에 답장이 왔으니, B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편지를 뜯어볼 수밖에 없었다. 사촌오빠를 대신 해 자신에게 답장을 보내 준 A의 편지를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문장에서부터 괜히 눈물이 터져 편지를 다시 읽고 또다시 읽고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조금은 생채기가 다독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조금 흘러 B는 다시 A에게 답장을 보냈다. 편지가 다시 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던 A는 B의 편지를 받고 설레었고, 그렇게 다시 답장을 받은 B도 A의 편지에 설레었다. 그렇게 둘은 A의 파병 기간이 끝날 때까지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펜팔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A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B와의 펜팔이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와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던 A는 문득 B가 떠올랐다. B와의 편지를 소중히 챙겨서 돌아왔던 그였다. 상자에서 편지들을 꺼내 다시 한번 읽어 보며 B를 생각했다. 사실 봉투에 써진 주소를 보며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B는 A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B의 편지가 A에게 전달된 것도 같은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B가 몹시 보고 싶어 졌다. 만나고 싶어 졌다. 하지만 B의 전화번호는 몰랐기 때문에 B의 의사를 물어볼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한번 더 편지를 보냈다.


    B야, 한국에 돌아와 첫 편지다-


    그리고 며칠 후, 답장이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리고 그들은 만나게 되었다. 편지는 수차례 오고 갔지만 사진 한번 나눈 적이 없어서 실제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안의 투명 친구를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나는 경험 이전에, PC통신에서의 투명 친구를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나는 <접속> 같은 경험 이전에, 그들에게도 투명 친구를 실제로 만나는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펜팔 친구였던, 조금은 이런저런 마음과 이런저런 망상도 해봤던 서로를, 실제로 만나게 되었고, 둘은 서로 첫눈에 반할 만큼 서로의 첫 만남에 좋은 기억을 갖게 됐다. 둘은 연애를 하기 시작했고, 몇 년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직 사회에서 자리 잡지 못한 A 때문에, 있는 집에서 온화하게 자라난 B가 고생을 많이 했지만 힘들어도 한동안은 행복했다고 한다.


...


    어머니는 이따금씩 이 이야기를 하며 "그때 편지가 전해지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반농담 반진담으로 던진다. 그러면 그 얘기를 듣고 괜히 토라진 아버지는 "한국에 와서 만나자고 하지 말걸"하고 맞장구를 친다. 사실 자라면서 부모의 행복한 모습보다는 그렇지 않은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런 그럴듯한 어쩌면 로맨틱할 수도 있는 인연의 시작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처음부터 불행하고자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테다. 그리고 그들도 그때는 젊었을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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