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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Jun 05. 2019

키스의 저주


    나에게는 키스의 저주라는 것이 있었다. 이른바 키스를 할 때마다 웃게 되는 저주. 그게 뭐야?라고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저주는 생각보다 오래갔고, 꽤 진지한 저주였다.


    저주가 걸린 장소는 어느 햇살 좋은 날의 대학로. C와 나는 대학로 KFC 앞의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C가 키스를 해왔다. 뽀뽀와 키스 사이, 조금 진한 입맞춤. 입술의 오랜 접촉. 갑자기 시작한 키스였지만 C를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그 키스도 좋았다. 키스를 하다 살짝 눈을 떴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금방 바뀔 줄 알았던 신호는 바뀌지 않았고 덕분에 길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약간의 민망함과 멋쩍은 마음에 그냥 웃어 버렸던 것이다. 


    크큭-


    웃어 버리면서 키스는 멈췄다. C의 얼굴이 빨개졌다. 키스해서가 아니라 내가 웃어서다. 이윽고 신호가 바뀌어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고, C도 빨개진 얼굴로 사람들 틈에 섞여 혼자 길을 건너가 버렸다. 


    기다려- 으하하- 같이 가- 으하하-


    눈치 없이 저만치 가고 있는 C를 보며 웃어댔다. 나는 C가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대로 길을 건너가 버렸고 나는 뒤쫓지 않은 채 신호가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신호 때까지 저 멀리 건너편 신호등 아래 고개를 푹 숙이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커다란 덩어리를 봐야만 했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자 C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긴 팔을 뻗어 손을 까딱까딱거렸다. 길을 건너면서부터 두 손을 합장 해 이마에 연신 붙였다 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는데, 고장 난 내 얼굴이 계속해서 생글 거리고 있었었나 보다. C는 몸을 일으키며 그런 나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나중에서야 C가 말하길, 생글 거리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증발해버리고 싶었다고 한다. 미안, 난 내가 생글거리고 있는지도 몰랐지 뭐야.


    너는 앞으로 키스할 때마다 웃게 될 거야-


    증발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내가 미웠던지 그는 내게 저주를 걸었다. 또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건 웃을 일이 아니었다. 현실이 되어 버렸으니까. 정말 그 후로 키스를 할 때마다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C는 내가 그럴 때마다 자신의 저주가 잘 걸렸음에 만족해했다. 


    문제는 C와 헤어진 후에도 이어졌다는 것이다. 키스의 저주는 그렇게 꼬박 2년을 갔다. 솔직히 괴로운 일이었다. 오죽하면 상대방으로부터 저주 풀고 오란 말까지 들었을까.


    그러다 나와 헤어지고 바로 미국 유학을 갔던 C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우린 재회하게 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난 저주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이제 저주 풀어줘-


    C는 슬며시 웃었다. 아마 C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C는 조금 꼼지락 거리더니 주문을 외우는 척했다.


    풀렸어-


    그리고 또 슬며시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C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저주에서 풀렸다. 더 이상 키스하면서 웃지 않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C와 나, 그리고 우리 둘을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이야기되고 있는 이야기다.


    내 키스의 저주 이야기. 내 시트콤 같은 추억 이야기. C와의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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