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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Feb 04. 2020

언니네 쌀롱 시청자 특집

엄마 이전에 여자, 구성원 이전에 하나의 사람


어제 <언니네 쌀롱>이 시청자 특집을 했다. 원래 연예인이나 방송인 등을 변신시켜주는데 이번엔 시청자 중 사회초년생인 학교 선생님과 맞벌이 딸 부부를 위해 손녀를 키우시는 할머니를 변신시켜 주었다. 


할머니의 변신은 역시나 기적 같았다. 점퍼와 편한 복장 그리고 운동화, 대충 빗은 머리, 맨얼굴. 우리가 엄마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보통 떠오를 그런 엄마의 모습으로 따님과 언니네 쌀롱에 오셨다. 설레고 신나 하며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받았다. 아마 자식이든 누구든 "머리 좀 하러 갈까?", "옷 좀 살까?"라고 했다면 "아냐 됐어. 내가 그런 거 해서 뭐해."라고 했을 테지만 멍석을 깔았더니 확실히 달라진다. 그런 걸 모르고 안 해봐서 그런 거지 알고 해 봤으면 웬만하면 다 좋아한다.


문득 구남친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분 생신에 꽤 좋은 향수와 샤워코롱을 사 갔었다. 명품 브랜드다 보니 다들 뭘 사온 건지 궁금해했는데, 향수와 샤워코롱이 나오는 걸 보고 구남친의 누나가 "엄마 이런 거 안 쓰는데 첨 써 보겠네~"라고 했다. 어머니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지만 내 기분엔 조금 좋아하셨던 거 같다. 


엄마니까 가족들이나 친인척들이 다들 엄마한테 주는 선물을 할 거라서 나는 여자한테 주는 선물을 준비했던던거였다. 여자한테 주는 선물이라거나 여자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거나 등의 "여자"의 의미는 생물학적인 성별보다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 "나도 저런 예쁜 거, 좋은 거, 향기 나는 거 갖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 그런 걸 에둘러 설명하려니 "여자"로 대변된 것뿐이지만. 자기 전에 샤워하고 코롱을 뿌린다거나 외출하기 전에 향수를 살짝 뿌려 본다거나 하는 건 기분 전환으로도 좋으니까. 특히나 안 써봤다면 내가 새로워지는, 달라지는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내 엄마에게 선물했을 때 기뻐했던 기억도 있기도 하고.


어제 <언니네 쌀롱>을 보면서 엄마 이전에 여자, 구성원 이전에 하나의 사람일 한 명의 사람을 스스로 먼저 잊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내가 아내나 엄마가 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엄마라는 자리가 갖는 그 모든 것들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나라는 걸 인지 할 수 있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라는 게 있다는 건 누구에게라도 좋은 거니까. 그래서 <언니네 쌀롱>의 그 어머니도 대변신 후 그렇게나 달라진 비주얼에 흡족하셔서 딸의 눈물 젖은 편지에도 꿋꿋하게 눈물 흘리지 않으셨던 게 아닐까. 이소라는 웃자고 말했지만 정말 화장이 마음에 들어서 화장 지워지는 게 싫어서 눈물을 참아 내셨을 수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화장이란 걸 받고 신세계를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더 그 얼굴을 두고 싶어 세수하기 싫었던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종종 머리도 하시고 화장도 하시고 예쁘고 멋진 옷도 입고 하세요. 특별할 거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라도. 설사 자기 전에 잠깐 하는 쇼타임이더라도. 내가 나라는 걸 인지 할 수 있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놓지 말아요. 어머니든 아버지든 내가 나로 있는 시간보다 내가 다른 무언가로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그게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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