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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Nov 15. 2020

마더 (マザー, MOTHER, 2020)

스포일러 포함

사람에게 있어 엄마라는 존재는 창조주이자 내가 처음 만나는 세상의 전부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가장 먼저 인지하고 몸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주는 것도 엄마이니까. 때문에 유달리 엄마와 자식과의 관계를 특별하게 그리는 경향이 많다. 덕분에 어떤 이야기든 특정 부분에 감정이입 할 수 있는 일종의 치트키로 영화를 비롯한 많은 미디어에서 다양한 엄마 이야기를 작품으로 올리고 있다. 영화 <마더>에서 엄마인 ‘아키코’는 그중 분노를 야기하는 엄마를 보여주고 있다.

 

‘아키코’는 어린 아들 ‘슈헤이’를 학대하고 방치하면서 남자와 방탕한 생활을 즐긴다. 어린 아들이 수도와 전기가 끊긴 집에서 생라면으로 허기를 채우든 말든 별 관심 없다. 그런 주제에 자식에 대한 집착은 강하다. 그래도 자식인 걸까-싶지만 흔한 가정폭력 부모들이 그러하듯 외로운 세상에, 살기 힘든 세상에, 아무 탈 없는 샌드백은 자식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 거다. 얘라도 없으면 나는 일말의 해소도 못하고 얘라도 없으면 난 어딘가에서 동정심을 받을 수도 없을 것이기에.

 

영화는 ‘슈헤이’ 위주의 이야기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키코’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왜 그렇게까지 됐는지 알 수 없기에 ‘아키코’는 조금의 면죄부도 없이 관객들에게 비난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자세히 보면 ‘아키코’ 탓만을 할 수는 없다. ‘아키코’와 ‘슈헤이’와 엮여 나오는 수많은 어른들이 그들의 사정을 알아도 ‘슈헤이’를 돕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아키코’보다 교육받지 못하는 ‘슈헤이’ 쪽이 훨씬 급하지만 그 누구도 ‘슈헤이’를 돕지 않고 ‘슈헤이’는 자신의 희생으로 엄마에게 순종하며 성장한다. 아무리 나쁜 부모여도 어린 자식일수록 자기를 희생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다. 내가 처음 만난 세상은 내게 전부이므로. 부모에게 열외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공포이기에 열외 되지 않기 위해 항상 부모를 용서한다.

 

‘아야’의 등장이 그래서 소중했다. ‘아야’는 유일하게 ‘슈헤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언급한 인물로, 책도 주고 음식도 주며 학교에 보낼 것을 제안한다. ‘슈헤이’에게 있어서는 '아야'가 제시한 것들이 새로운 세상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 세상을 제대로 확실하게 만났다면 일찌감치 ‘아키코’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을 거다. 무조건 희생하고 순종하며 애써 부모의 손을 잡지 않아도 나는 살 수 있구나라는 걸 알았을 테니까. 하지만 새로운 세상으로의 탈출이 무참히 실패했을 때, ‘슈헤이’는 역시 나는 엄마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구나 하고 포기했을 거다. 수많은 가정폭력 가정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도움에서 손을 거두고 가스라이팅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슈헤이’에게 찾아온 새로운 첫 세상이 감옥인 것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비로소 엄마를 벗어났지만 감옥이라니. 그런데도 ‘슈헤이’가 편해 보여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12년의 시간을 얻었으니 그 시간 동안 엄마에게서 벗어나 더욱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슈헤이’가 알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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