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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Nov 29. 2020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포일러 포함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상고출신 대기업 말단 직원 여성들이 회사의 불법 폐수 방출 사실을 알게 된 후 내부 고발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상고출신은 회사 유니폼을 입어야 하고, 직원들 취향에 맞게 때마다 커피 타서 날라야 하고, 잔심부름이나 하며, 학창시절에 1~2등을 다투었던 그녀들임에도 상고 출신이기 때문에 어렵거나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할거라는 선입견이 가득찼던 90년대 중반의 여성직장인들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몇 설정들은 지금도 볼 수 있는 직장 내 모습이라 아마 영화를 보고 그 이야기만 밤 새 나누어도 모자랄 수 있겠더라.


연출이 조금 늘어지더라도 그런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꽤 잘 보고 있었는데, 후반부를 넘어 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늘어지고 작위적으로 바뀐다. 영화의 전후반을 다른 작가가 쓴 것처럼 말이다. 계속해서 배제하던 부류가 갑자기 아군으로 탈바꿈하여 등장하고, 모든 사건이 화기애애하게 급 진전되어 해결 되는 것도 그렇지만 결말에 이르러 작위적인 내용들 속에 노림수가 보이는 성별 띄우는 그림에 헛웃음까지 나왔다. 그러다 이 영화가 성장영화인 척 하지만 성장영화는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그녀들은 결국 토익을 보고 대리가 된다. 그게 성장일까. 상고출신을 배척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 토익을 부셨어야 하지 않나, 누군가는 회사를 나왔어야 하지 않나. 성장영화였다면 영화 첫 부분과 끝 부분을 이었을 때 달라져야 하는데 달라진 것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운데 이야기들은 그녀들을 성장시키지 못했다. 그렇게나 각고의 노력을 했는데 외국인 사장 하나에 잘못이 씌워지면 끝인걸까. 그녀들이 그렇게나 노력한 것들은 어떤 것도 바꿔내지 못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대리가 되었지만 곧 IMF가 터졌을게다. 그녀들은 과연 살아 남았을까. 커피 타 줄 여직원들을 대량 해고 하게 되며 탄생하게 된 레전드 역작이 믹스커피인 것처럼 그녀들이 토익으로 대리가 되었다고 해도 그저 명칭만 대리였을 뿐이고 대체자들은 넘쳤을테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재밌었다고 얘기 될 수 있는 건 배우들 덕이다. 세 주인공은 물론이고 나오는 여직원들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모두 자기 주장이 좋아서 그녀들을 보는 즐거움이 그렇게나 좋다. 캐릭터들이 찰떡이고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귀여운지, 예쁜지, 멋있는지 그 자세와 각도와 표현 모두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녀들 덕에 이 영화가 재밌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 자체도 좀 삼진그룹스러운 느낌이 있는 것인가. 


어쨌든 그녀들 덕에 좋은 이야기 하나 얻어 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기 어렵고 하는 것도 어렵다면, 싫어하는 걸 하지 않기라도 해보라는 것. 흔한 이야기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야기다. 특히나 사회 그룹 속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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