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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Apr 27. 2021

노매드랜드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록 페스티벌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지만, 록 페스티벌을 가면 3~4일쯤 텐트 생활을 하곤 했다. 아침에 알람 소리에 깨는 게 아니라 텐트를 달구는 햇빛이 뜨겁거나 배고프거나 나지막이 들려오는 무대 쪽 사운드 체크소리나 여러 이유로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된다. 어슬렁 텐트 밖으로 기어 나와 수건 하나 어깨에 걸치고 세수하러 나온 무리들에 줄을 서 내 차례가 되면 세수하고 양치질을 한다. 간혹 운이 좋아 줄이 길지 않으면 샤워도 깔끔하게 해낸다. 그 후에는 여전히 덜 깬 얼굴로 하늘이나 나무, 사람들을 멍하게 바라보며 라면이나 빵을 우적우적 먹으며 아침 공복을 채운다. 그렇게 슬슬 잠에서 깨면 무대 쪽으로 향한다. 아직 어떤 밴드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어슬렁 돌아다니다가 그늘 쪽에 캠핑 의자를 펼치고 자리 잡고 앉거나 눕는다. 그렇게 한숨 자고 공연 시작 소리에 깨면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나 콜라 등을 꺼내서 마시고 누군가가 사다 주는 바비큐나 피자 등을 먹으며 공연 속에 허우적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미친 듯 땀에 절어 뛰고 놀다가 깊은 밤 모든 공연이 끝나면 미처 사라지지 않은 감흥에 흐느적거리며 텐트로 돌아와 사람들과 하루 이야기를 하며 왁자지껄 술 먹고 음식을 먹으며 늦게까지 신나게 떠들어댄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기도 한다. 이때 함께 어울리는 것은 같이 간 동료들만이 아니다. 비슷한 곳에 텐트를 쳤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 같은 것들을 하며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기간 동안은 누구보다 절친처럼 가까워진다. 그 순간은 영원일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일상 같은 거 떠오르지도 않고 그냥 이 시간만이 영원해서 매일이 이럴 것만 같다. 그래서 영원할 것 같은 3일이 흘러 락페가 끝나고 텐트를 철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항상 멀고 아쉽다. 그렇게 돌아온 일상에서 락페때 흥겨웠던 기억으로 한동안 살게 된다. 다시 떠나고 싶어하며. 다시 떠돌며 낯선 자들과 익숙한 것처럼 함께 하고 싶다 생각하면서.



<노매드랜드>가 시작하고 한참 동안은 이런 내 록 페스티벌과 캠핑의 기억을 추억하며 보았다. 밴에서 먹고 자며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펀'에게 이입한 첫 감정이었다. 그렇게 보였다. 히피들, 집시들, 어디에 묶여 있지 않은 그들의 자유로움이라고. 지붕이 있는 집에서 편하게 잠들면서도 등이 불편하고 시끄러워 뒤척이던 텐트 생활을 그리워하던 것들이 생각났다. 밴을 정박하는 곳에서 만난 다른 유목민들과 보내는 즐겁고 유쾌한 시간들, 여러 사람들과 서로의 것을 나누는 '펀'의 삶을 조금은 동경하게 되었다. 나도 밴에 의지해 저렇게 돌아다니며 산다면 좀 나아질까-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가 흘러갈수록 '펀'의 다른 감정들에도 이입되기 시작했다. 유목민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만나는 또 다른 유목민들이 모두가 다른 이유로 다른 아픔과 상실을 가지고, 모두가 다른 과정으로 그렇게 매일 서로를 스쳐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언제나 지친 얼굴에 외로움이 비칠 때마다, 그리움이 가득할 때마다 '펀'을 한껏 걱정했다. '펀'에게 외롭냐고 물었지만 사실은 내가 내게 묻는 것 같기도 했다.



‘펀'은 여정 끝에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된다.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의 그녀들도 만났을 그 모습. 그러자 다시 새 여정을 시작한 '펀'을 걱정하는 대신에 그녀의 여정을 존중하게 되었다.



영화가 매우 아름답다. 영상 속 광활한 자연이 너무도 아름답고 그 자연을 담아낸 영상도 아름답다. 음악까지 너무도 아름답다. 너무도 아름답고 아름다워 '펀'의 감정을 시간 흐름으로 고스란히 느껴, 흥미로웠고 추억했고 즐거웠고 그리웠고 외로웠고 슬펐다. 그리고 떠나고 싶었다. '펀'처럼 그리고 그들처럼. 어쩌면 그들은 유목민이 아니라 순례자들일지도 모르겠다.



p.s : 엔딩크레딧을 보면 실제 노매드들을 캐스팅해서 그런지 대부분이 본인 이름으로 출연하여 캐스팅명과 배우명이 같아 그들의 이름이 더 잘 와닿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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