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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May 31. 2021

화를 내야 할 때 따라주지 않는 몸

그리고 혼자 합리화를 한다


요즘 떠돌고 있는 성향 테스트 하나를 했다. 테스트 결과 중에 "화를 내야 할 땐 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몸이 잘 안 따라준다, 당장 말로 화내기보다는 글로 써서 반박하는 게 좋다."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보고 껄껄- 웃어버렸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사실 지금 이 글도 그래서 쓰는 것이니까.


최근 남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아무 생각 없는 말을 뇌까리는 경우를 만났었다. 나름 내가 안전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 곳에서였다. 심지어 나와 교류가 그렇게 많지 않던 별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 왜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하지 않았던 건지, 못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은 항상 그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하게 된다. 정말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반박하는 말을 생각해내거나, 하는 것 자체가 버겁다. 그저 왜 저 사람은 저 말같지도 않은 말을 이런 타이밍에 이런 곳에서 지껄이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될 뿐 입조차 열리지 않는다. 입술이 천근만근이 되어 흘러내려 붙어 버린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잠깐의 우스갯거리가 되어 버린 후에나 혼자 합리화를 한다. 대응하지 못한 내 잘못이 아니라 아무 말을 아무렇게나 한 상대가 잘못인 거라고. 하지만 그런 합리화도 잠깐이다. 마음만 더 불편해진다. 


아마 회사 쪽 사람들이 보면 "너 미팅 때는 말 잘하잖아? 따박따박 잘 받아치잖아?"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당연하다. 준비를 꽤 잘해두고 시뮬레이션도 다양하게 해 보기 때문에 발표도 설득도 대응도 반박도 꽤 잘한다. 아는 것에 대해,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하는 이야기들은 그렇다.


나는 아직도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걸까.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고 잘 수습하는 것이 인간관계에 꽤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는데, 그걸 잘 못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안 좋은 얘기를 들으면 가볍게 날리지도 못하고 며칠 동안 그 생각만 하는 주제에 그 자리에서 어쩌지 못하고 그걸 그냥 혼자 소화해 낼 방법을 평생 찾는구나 싶다. 언성을 높이고 분노에 떠는 그런 화가 아니더라도 그냥 그런 상황일 때 천근만근 하는 입술이 가볍게 떨어져 열리며 말을 내뱉을 수 있으면 좋겠다. "헛소리 멈춰!" 이 한마디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싶지만 그 한마디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버리니 문제인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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