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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Feb 11. 2022

인과율이 정확한 인생

  

  지하철역에 다 와서야 카드지갑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집과 지하철역은 10분~15분 정도의 거리인데, 출근시간의 이 거리는 왕복할 수 있을만한 거리가 아니다. 어떻게든 지금 그냥 지하철을 탈 수 있어야 하는데, 평소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어? 뭐가 있다. 꺼내보니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 그랬다. 아침에 책상 위를 굴러 다니는 것들 중 눈에 띈 5만 원짜리를 집어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것이다. 몇 주째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날따라 그 돈을 챙겼던 것이다.


  하지만 5만 원권으로 1회용 교통카드 한 장 뽑는 건 불가능해서 역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저렴한 걸 하나 샀다. 그리고 거스름돈으로 1회용 교통카드를 구매했다.


  그렇게 여느 날과 다름없는 출근길로 돌아갔다.


  귀와 머리에 갑자기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겨울에 종종 그렇기 때문에 약을 먹어서 통증을 가라 앉혀야 했다. 약을 꺼내고 가방을 더듬거렸다. 물이 담긴 텀블러가 있어야 했지만 없었다. 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냥 왔구나. 큰일이었다. 통증이 가시질 않는데 물이 없어 약을 먹을 수가 없다니.


  그때 가방 안에 있던 것. 아까 5만 원권을 깨기 위해 갔던 편의점에서 산 것. 바로 보리차 음료. 씩 웃으며 냉큼 꺼내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이 얼마나 인과율이 정확한 인생인지. 인생 다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 우연은 없다. 모든 게 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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