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집에는 누군가 아빠에게 줬다던 야시카 카메라가 있었다. 하지만 필름 살 돈도, 찍고 나서 그걸 현상할 돈도 없어서 카메라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장롱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누군가들이 찍어 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진들은 상자 안에 담겨 있었는데, 사진 뒤에는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어서 뒤섞여도 알아볼 수는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학교 숙제로 가족 앨범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앨범이 뭔지도 잘 몰랐다. 있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필름 살 돈도 없는데, 앨범 살 돈이 어딨었으랴. 내가 학교 숙제라는데 어떻게 하냐고 난리를 피웠던 것 같다. 난리를 피운다고 하늘에서 앨범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다음 날 엄마가 책가방에 연습장 하나를 꽂아 넣어주셨다. 꺼내 보니 연습장에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사진 옆에는 날짜와 장소, 그때 어땠는지에 대한 짧은 코멘트들이 적혀 있었다. 나중에서야 할 수 있던 생각이었지만, 이 코멘트들을 쓰면서 얼마나 벅차 했을까. 사진만 붙였으면 얼마 되지도 않는 사진 금방 붙이고 끝났을 텐데.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앨범이 생겼다고 신나서 학교에 갔던 거 같다.
그리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우선 앨범이 어떻게 생긴 건지 알게 됐다. 예쁜 표지에 안에 비닐이 덮인 예쁘고 깨끗한 곳에 들어가 있는 사진들. 다들 그런 앨범들을 가져와서 서로에게 보여줬다. 아마 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리고 불현듯 꺼내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선생님이 검사하셨기 때문에 책상 위에 꺼내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선생님이 "이게 뭐야? 엄마가 직접 만드셨니?" 하고 웃으셨다. 신기해서 웃었는지 감동해서 웃었는지, 그냥 웃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웃어버리는 바람에 애들이 내 자리로 와서 구경하기 시작했고 모두 웃었다. 볼펜 글씨가 좀 번져 있기도 하고 사진 붙일 때 쓴 풀 때문인지 종이가 조금 얼룩져 있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마도 있어 본 적 없는 앨범을 그렇게나 급하게 만들어 냈을 텐데 그 퀄리티가 오죽했으랴. 모두가 날 가운데 두고 웃고 있는데, 나는 웃지도 못하겠고 너무 싫고 무서웠었다.
그 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와서 울면서 연습장을 찢어댔던 거 밖에는. 그 와중에도 사진 아까운 건 알아서 사진 떼어 놓고 종이만 찢어댔다. 그때 나의 바보 같은 행동으로 아까운 엄마의 글씨들이 내 마음과 함께 계속해서 찢겨 나갔다. 약간의 철이 들고 나서부터 내내 후회하는 것 중 하나다.
그 후 앨범이 생겼다. 언제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빨간 표지에 어린 여자 아이가 그려진 앨범, 파란 표지에 젊은 여자가 그려진 앨범. 두 앨범에 내 8년간의 사진을 담고도 자리가 남았다. 그 앨범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겉이 다 찢어졌는데도 그 앨범을 그대로 갖고 있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저 두 번 후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겠지.
요즘은 앨범도 필요 없고 폰이나 각종 하드 속에 보관되는 것이 더 많을 테다. 그리고 사진 자체로 책을 만들 수도 있다. 이따금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오면 그 여행 때 찍은 사진들로 스토리 라인을 따서 사진책을 만들어 드리면 꽤나 좋아하신다. 그걸로 그때의 마음의 빚이 갚아지지는 않겠지만, 찢어진 조각들 속의 엄마 글씨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때는 상상하지도 못하게 나아진 이때를 예쁘게 담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