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후 반차를 내고 점심시간이 끝난 후 바로 퇴근했다. 그리고 친구와 만나기로 한 한강 공원으로 향했다. 비가 오거나 흐릴 거라고 했기 때문에 큰 기대 하지 않았는데 날씨가 좋아서 흥얼거리며 갔다. 친구가 일 때문에 한 시간 정도 늦을 거라고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평일 낮에 그렇게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공원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긴 이제 막 점심시간이 지났을 테니까. 그래서 한강과 남산타워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책을 보다가 누웠다. 누워서 보는 하늘이 기가 막혔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한 꼬마가 등장했다.
"나도 앉고 싶은데."
근처 벤치들이 다 비어 있는데, 굳이 내가 누워 있는 벤치에 와서 기대감에 찬 얼굴로 앉고 싶다고 외친 꼬마. 굳이 이 자리에 앉고 싶은 이유가 있겠지 하며 몸을 일으켜 한쪽 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렇게 둘이 멍하니 하늘과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강 건너에 지하철이 지나가는 걸 보며 "와 지하철" 했더니 "어디요? 어디요?"라고 대꾸해왔다. 나는 손가락으로 강 건너를 가리켰고, 꼬마도 오! 오! 하며 봤다. 지하철을 본 거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멍하니 하늘을 보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꼬마가 "여기 시원하지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응. 시원하네요. 그런데 시원한 거 마시고 싶네요."라고 대꾸해줬다. 꼬마는 자기가 마시던 뽀로로 음료수를 내게 내밀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이랑 같은 거 나눠 먹고 마시고 그러면 안 돼요."하고 방역 관련 일침을 했더니 피식 거리며 "싫음 말아요." 해왔다.
또다시 멍 때리는데, "근데요.. 있잖아요.."라고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오길래 드디어 시작된 건가 직감했다. 뜬금없이 던져지는 이 또래 아이들의 자랑. 꼬마를 쳐다봤더니 "나 어제 달리기 1등 했어요." 툭. 역시였다. "안물안궁"이라고 대답했지만 "그리고 아까 밥도 안 흘리고 다 먹었어요" 툭. 그건 칭찬해줬다. 신이 난 꼬마는 이것저것 얘기해줬고 그때그때 "오~" "짱이다" 하고 짧은 대꾸를 해줬다. 그러다 꼬마 엄마가 "이모 귀찮게 하면 안 돼~"하며 미안한 표정을 내게 보이시더니 꼬마를 데려가셨다. 아, 꼬마는 엄마와 함께 왔는데, 꼬마의 엄마는 근처에서 꼬마보다 좀 더 어린 꼬마 뒤를 쫓아다니느라 바쁘셨다. 꼬마의 동생이겠지.
꼬마는 꽤나 할 말이 남았는지 가기 싫어했지만 결국 엄마에게 끌려 동생과 함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가면서 서로 손을 흔들어 주며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