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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Nov 09. 2015

담에도 불 지르러 오니라~

나는 방화범이었나

남의 집에 불내고  과학실험하려고 했다는 초딩 사건 기사를 보면서 "이젠 뭐 어른 놈들은 죄 지으면 술 핑계고 어린 놈들은 죄 지으면 과학실험 핑계구만"하고 보니 불현듯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컷컷으로 기억나기로는 나는 큰 외삼촌댁에 불을 지를 뻔했던 방화범이었다.


초딩 1땐가 2땐가였던것 같다. 외삼촌은 교장선생님이셨고, 외숙모는 학원 원장이셔서 항상 문제집 뭉텅이나 전화번호부 두께의 문제은행을 받고 돌아오곤 했는데 그 날도 이달학습 같은 걸 뭉텅이로 받아 왔었으니까.


아무튼 큰 외삼촌댁에 놀러 갔는데, 나랑 2,3살 정도 차이 나던 사촌언니 오빠가 놀자고 해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있는 구석방으로 셋이 들어갔다. 이거 봐봐 이거 신기한 거야 이러면서 사촌 오빠가 성냥으로 불을 켰던가 불을 켜서 종이에 붙였던가 아무튼 종이에 불이 붙었다. 우와 아아 하던 청순한 뇌의 나는 그 불을 보고 있었고 언니랑 오빠가 그 불 잘 보고 있으라며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불이 옆에 있던 잡동사니에 옮겨 붙었고 나는 으헉  무서워하며 문을 열다가 아버지에게 바로  발각됐다. 아버지는 내 뒤로 치솟고 있는 불을 보시고 뛰어 와서 나를 빼 내 던지시고 아무거나 잡고 불을 끄기 시작하셨다. 다행히도 불은 곧 꺼졌다.


큰 외삼촌이 막 화를 내셨는데, 사촌언니랑 사촌오빠는 어디로 간 건지.. 나 혼자 혼나고 있었는데 너무 꼬꼬마 때라 그랬는지 아니면 무서워서 그랬는지 언니 오빠가 그랬다는 말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었다. 집에 갈 때도 "담에도 불 지르러 오니라~"라고 놀리셔서 결국은 징징 짰다.


그리고 기억 나는 거라고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약한 화상이었던가 상처였던가 나서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은 건지 하얀 장갑을 낀 건지 하얗게 된 오른손을 매만지고 있었다는 것. 의외로 그 일로 아버지에게 혼 난 기억은 없다.


하지만 두고두고 그 일을  억울해했다. 그저 나는 어렸고 뇌가 청순해서 그 불을 보고 있었던 건데. 내가 그런 게 아니었는데. 억울했었지. 그때 나도 과학실험 중이었습니다-할걸 그랬지. 아, 그러면 과학 문제집을 받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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